등록 : 2014.09.03 21:13
수정 : 2015.01.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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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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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지역미술관 새바람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
“예술은 다 통한다고 하잖아요? 미술뿐 아니라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게 이곳 미술관의 큰 장점이에요.”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열린 ‘미술관 음악회’에서 만난 주부 김현진(42)씨는 “큰 무대의 음악회도 자주 가봤지만 젊고 재능있는 연주자들을 작은 무대에서 만나는 것도 감동적이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초등학생 자녀 3명과 함께 온 김씨는 “양평에 살 때부터 미술관을 자주 들렀는데 프로그램이 아주 좋아 2년 전 구리로 이사 가서도 아이들과 함께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술관 음악회는 90석 규모의 작은 공간에서 열렸지만 베토벤 트리오(3중주) 제7번 <대공>과 제5번 <유령> 등 정통 고전음악을 선사했다. 엄마·아빠를 따라온 초등학생들도 흐트러짐 없이 배필호(파아노)·최고은(바이올린)·강찬욱(첼로) 등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트리오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양평군립미술관이 이처럼 지역사회의 예술 전진기지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철순(58·사진) 관장을 만나 들어봤다.
양평은 인구 10만5천명에 불과한 서울 외곽의 작은 도시다. 그런데 지난해 인구의 갑절 가까운 19만명의 관람객이 양평군립미술관을 다녀갔다. 2013년도 문화부 공식집계를 보면 군립미술관으로는 전국 1위의 관람객을 기록했으며, 전체 미술관을 통틀어서는 10위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전국 으뜸이다.
무엇보다 이 관장의 전문성과 헌신이 눈에 띈다. ‘예술의 전당’ 공채 1기 출신인 그는 2009년 예술사업국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25년간 미술·음악 분야 기획 쪽에 전념했다.
그는 전국에서 미술작가가 가장 많이 산다는 지역적 특수성을 살려 참신한 전시기획을 꾸준히 선보였다. ‘주말 어린이예술학교 창의체험학습’, 지역 초등학교 탐방 프로그램인 ‘찾아가는 창의체험 예술교육’, 작품을 본 느낌을 담은 그림 그리기 등 지역밀착형 운영전략도 효과적이었다. 지난해 양평미술관을 2회 이상 재방문한 관람객 비율이 63%에 이른다는 자체 설문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간섭 대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미술관 운영 방침이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김선교 양평군수가 3선에 성공하는 데 한몫을 했다는 분석도 들린다.
2011년 12월 개관한 이래 올 8월 말 현재 누적 관람객 40만명을 돌파한 양평미술관의 모범적인 운영 사례는 이미 전국적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해 18개 시·군에서 벤치마킹을 다녀갔고, 지난해부터 서울시교육청에서 미술영재반 교육을 양평군립미술관에 위탁하기도 했다. 미술관 직원은 관장을 포함해 9명에 불과하지만 청소와 경비 담당자까지 대도시의 큰 미술관 개관전이나 기획전에는 꼭 참관해서 견문을 넓힌다.
이 관장은 “미술관에서 음악회도 여는 이유는 마땅한 공연장이 드문 양평 주민들과 문화 소통을 하고, 수요층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의 문화예술 정책이 아직도 국민 계몽 시대에 머물러 지역문화의 다양성이 너무 부족한 현실을 개선해보자는 의지도 작용했다고 한다. 2012년 미술관 로비에서 갈라쇼 형식의 무료 대중공연으로 시작해 본격적인 클래식 공연까지 영역을 확대한 것도 “공공서비스 기관에서 문화 공급의 다양성을 시도해야 한다”는 이 관장의 소신이 깔려 있다.
예술의전당 1기 출신 예술기획통
25년간 미술·음악분야 경험 살려
미래 비전 담은 전시기획
한해 관람객 19만명 양평인구 2배
“지역문화 다양성 넓히고 싶어”
“미술관 운영자는 관람객에 대한 믿음이 필요해요. 좋은 것은 통한다는 믿음이죠. 전시 작품의 질에서 최고 수준을 유지하기만 하면 서울 예술의 전당만 가던 사람들도 양평미술관을 찾는다는 것이죠.”
양평군립미술관은 ‘나우 투 퓨처’(오늘에서 내일까지)라는 운영 방침 아래, 미래 비전을 담은 전시기획을 위주로 틈새시장 전략을 펴고 있다. 다른 미술관에서 보기 힘든 만화전까지 연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현대 예술의 특징 중 하나가 알 수 없다는 거잖아요. 미술인지 전시인지 영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창작성이 엿보이고 주제만 맞으면 나이·학력·지역 등을 불문하고 전시작가로 초대합니다. 근본적으론 예술가를 위한 미술관이나, 대관 위주 미술관을 지양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작가들의 기획전시를 많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관장은 예술행정가이자 그 자신 음악·미술·문학 등 문화예술 전반의 남다른 애호가이기도 하다. 예술의 전당 부장시절인 1995년 양평으로 이주한 그의 10평 남짓한 2층 다락방에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클래식 엘피(LP)가 5천장이 넘는다. 독일의 빈티지 명기인 18인치 차이스이콘 스피커에서는 깊이 있는 소리가 나오고, 다락방 한쪽에는 수천권에 이르는 문화예술 등 각종 서책들이 빽빽하게 흩어져 있다.
중학 시절 클래식 음악에 눈떠 작곡으로 예술고 진학을 꿈꾸기도 했던 그는 고교 1학년 때 음악감상대회 공동 1위를 했고, 대학 시절인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작품인 이탈리아 파르마 오페라단의 <아이다>를 보고 싶어 엑스트라 공모에 응해 출연하기도 했다. 2000년부터는 양평에서 마을음악회도 기획해 지금껏 140회 공연을 성사시켰다.
양평/글·사진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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