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15 19:09
수정 : 2015.01.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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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노동’의 당사자 에마뉘엘 사누가 아픔을 딛고 한국에서 계속 아프리카 문화의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가 살짝 내린 지난 3일 오후, 에마뉘엘이 서울 종로 거리에서 활기찬 몸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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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아프리카 무용수 에마뉘엘 사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의 나라를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아프리카’로 뭉뚱그린다. 지하철에서 만난 어린아이는 그를 보자 무서워하며 달아났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였다. 한국이 다문화 사회가 됐다고 하지만 아직 한국인들은 검은 피부에 대해선 깊은 편견을 갖고 있다고 그는 여긴다. 그의 나라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부르키나파소’. 그는 올해 초 임금 체불과 노예노동으로 뉴스의 초점이 됐던 경기도 포천의 아프리카예술박물관에서 일하던 무용수이다.
당시 그곳에서 노동착취를 당하고 인종차별에 시달리며 일하던 12명의 아프리카 예술인들 대부분은 피해보상을 받고 귀국했으나 에마뉘엘 사누(35·사진)는 여전히 한국에서 춤을 추고 있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으나 쉽게 한국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한국이 좋다. 한국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
어려운 여건서도 춤·노래 좋아해
부르키나파소 ‘최고 무용수’ 뽑혀
유럽 순회공연 도중 한국과 인연
포천 예술박물관서 열악한 대우…
“피부색이 이런 큰 차별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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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노동’의 당사자 에마뉘엘 사누가 아픔을 딛고 한국에서 계속 아프리카 문화의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가 살짝 내린 지난 3일 오후, 에마뉘엘이 서울 종로 거리에서 활기찬 몸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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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노동’의 당사자 에마뉘엘 사누가 아픔을 딛고 한국에서 계속 아프리카 문화의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가 살짝 내린 지난 3일 오후, 에마뉘엘이 서울 종로 거리에서 활기찬 몸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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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노동’의 당사자 에마뉘엘 사누가 아픔을 딛고 한국에서 계속 아프리카 문화의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가 살짝 내린 지난 3일 오후, 에마뉘엘이 서울 종로 거리에서 활기찬 몸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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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족은 가난했다. 3형제의 장남이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곧 학업을 포기하고 삼촌이 하는 옷가게에 취직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흥이 좋았다. 모시족과 보보족 등 63개 부족으로 이뤄진 그의 나라는 비록 가난했지만 거의 매일 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가 열렸다. 어린 에마뉘엘은 그런 축제를 따라다니며 아프리카 전통춤을 몸에 익혔다. 입에서는 ‘쁘리쁘리쁘랑’이라는 즐거울 때 내는 후렴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가족들 몰래 무용학원에 다녔다. 현대무용을 익히기 시작했다. 삼촌은 가게 일과 무용을 함께 할 수 없다며 하나를 포기하라고 했다. 그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돈 버는 일을 포기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무용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오디션을 통해 최고 무용수로 선발됐다. 국내 무용 콩쿠르에서 1위로 뽑힌 에마뉘엘은 아프리카 처음으로 여러 나라가 함께 작업한 오페라 <사막의 오페라> 오디션에 합격해 프랑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지를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 아프리카 전대륙 무용 콩쿠르에 국가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부르키나파소의 전통무용 16개를 몸에 익혔을 뿐 아니라 현대무용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유럽 순회공연을 하던 에마뉘엘은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 관계자를 만나 우연히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러나 큰 꿈을 안고 온 한국은 너무나 차가웠다. 날씨만 추운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마음이 시릴 정도로 차게 느껴졌다. 그를 고용한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은 무용수가 아닌 ‘아프리카산 인간’으로 취급했다. 월 60여만원의 임금에 하루 식대로는 4천원을 받았다. 휴가는 없었고 여권도 압수당했다. 박물관 쪽은 “너희 나라 수준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보수”라고 말했다.
그래서 에마뉘엘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우리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우리가 겪은 일에 대한 원망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우리를 차별하는 태도가 가장 크게 화났다”고 말했다. 무릎을 다친 동료 무용수는 박물관 입구에 거북을 안고 ‘전시’돼야 했다. 그렇게 저급한 환경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던 에마뉘엘은 그나마 마음이 따뜻한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와 한국인들은 단지 피부색이 다를 뿐입니다. 그 다른 피부색이 이렇게 큰 차별을 줄 수 있는지 몰랐어요.” 오페라를 공연하며 월드 투어를 경험한 에마뉘엘은 한국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인종차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그 어느 나라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란다.
그는 지난 4월 다시 한국에 와서 홍대 앞 소극장에서 아프리카 전통춤과 현대무용 공연을 하고 있다. ‘쿨레 칸’이란 이름의 아프리카 예술단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아프리카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을 대상으로 대안학교에서 아프리카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 청소년들이 더 이상 검은 피부에 대해 거리감을 갖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는 경향도 있고요. 특히 검은 피부에 대해선 많은 거리감이 있어요. 글로벌화의 시작은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인데 말이죠.”
그는 물론 고향을 그리워한다. “비록 가난한 나라이긴 하지만, 우리는 음악과 춤으로 항상 행복할 수 있었어요.” 서아프리카에 있는 부르키나파소는 ‘정직한(고결한) 사람의 나라’라는 뜻이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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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노동’의 당사자 에마뉘엘 사누가 아픔을 딛고 한국에서 계속 아프리카 문화의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가 살짝 내린 지난 3일 오후, 에마뉘엘이 서울 종로 거리에서 활기찬 몸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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