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임정현.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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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창단 공연하는 이소선합창단 지휘자 임정현 씨
“2011년 9월7일 이소선 어머니 영결식을 앞두고 노래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갔죠. ‘하나로 단결해 싸우라’는 어머니의 뜻을 받드는 의미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동자 25명씩을 모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밤새 연습해 불러 드렸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그날을 계기로 꾸려진 이소선 합창단이 오는 27일 저녁 7시 서울 세브란스병원 은명대강당에서 창단 공연 <손 내밀어>를 한다. 지난 3년간 세 번의 이소선 어머니 추모식을 비롯해 노동 집회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다져진 실력을 처음으로 정식 무대에서 선보이는 자리다. “솔직히 처음엔 오합지졸과 다름이 없었죠. 악보를 읽을 줄 아는 단원들도 많지 않았고, 비정규직, 교대근무자, 시민활동가 등등 저마다 바쁜 탓에 다 함께 모여 연습하기도 어려웠고요. 하지만 노동가요도, 노동자 문화도 아름답고 멋지게 감동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노동자 합창단의 본보기로 키워나갈 작정입니다.” 상임 지휘자인 테너 임정현(50·사진)씨의 의욕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 19일 <한겨레>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노동가요 부르는 테너, 여전히 이물질이죠? 클래식 쪽에서는 이상하게 보고 이른바 운동권 쪽에서는 낯설어하고. 하지만 ‘나’ 자신이 곧 문화운동체라는 사명감으로 버텼더니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네요.” 스스로를 ‘테너, 오페라 가수 겸 제작자’라고 소개하는 그의 남다른 이력을 살펴보면 그의 말뜻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부산에서 자란 그는 서울예고를 거쳐 1983년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하면서 ‘세계적인 테너’를 꿈꿨다. 하지만 1학년 2학기 때 ‘예술과사회연구회’ 동아리, 노래패, 연극반 활동 등을 하게 되면서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 전형적인 엘리트 성악가의 길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눈과 가슴이 더 쏠렸다. 87년에는 김민기·김창남·김재섭씨 등과 함께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음반 작업에 참가했고, 89년에는 최초의 노동자 노래운동 단체인 ‘새벽’에서 민중가요 가수로 활동하면서 ‘운동권 테너’로 이름을 얻었다. 앞서 군 복무를 마치고 부산에서 지역노래패 ‘노래야 나오너라’를 꾸리고 거제도 대우조선, 울산 현대중공업, 서울지하철노조 노래패 등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소선 영결식 공연 계기로 결성27일 연세세브란스병원서 첫 공연
“우리 고민·정서 담은 노래로 소통
노동자합창단 본보기로 키우겠다” 성악가 길 걷다 노래운동에 관심
민중가수 활동 ‘노찾사’ 1집 참가
30대말 늦깎이로 유럽유학 8년 뒤
테너·오페라 가수·제작자로 활동 그가 이처럼 노동자 문화예술운동에 투신한 배경에는 아버지 임기윤 목사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동일방직 노조를 후원하는 등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꼽히던 임 목사는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연루돼 보안사로 끌려갔다가 의문사를 했다. 훗날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한 공식 사인은 뇌출혈이었고,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할 때 두개골 뒤쪽이 깨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다 96년 그는 30대 후반에 유럽으로 늦깎이 음악 유학을 떠났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쇼팽아카데미와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 로마의 아람아카데미 등에서 클라라 스카란젤라 교수, 스티븐 크래머 교수를 사사했다. “90년대 들어 문민화의 영향으로 노동운동의 방향성이 달라지면서 노래패 등 문화운동 단체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는 등 활동방식도 바뀌었죠. 개인적으로는 생계 수단으로 전문 합창단인 서울모데트합창단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음악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자신 실력도 쌓지 않고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건 일종의 사기 아니겠어요?” 8년간의 짧지 않은 유학을 통해 그는 우리나라 음악 교육의 문제점을 한층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성악 쪽만 보더라도 ‘순수’라는 울타리 속에 안주하며 자기 위안만 추구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죠.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리의 생활과 고민과 정서를 담은 노래를 해야 대중과 소통하고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곧 그가 이소선합창단을 통해서 추구하는 음악과 노래의 존재 가치이기도 하다. “창단 첫 공연인 만큼 합창단의 지향성을 담은 곡목들을 위주로 준비했어요. 잘 알려진 우리 운동가요는 기본이고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 남미 민중가요 ‘산디니스타에게 바치는 노래’도 골랐어요.” 합창단에 가입한 전체 단원 50명으로 양대 노총 조합원뿐 아니라 쌍용차 노조의 해직 노동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글문화연대 등의 활동가, 연기하는 노동자 맹봉학씨 등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번 무대에는 그나마 꾸준히 연습한 34명이 화음을 맞춘다. 임씨는 현재 창작 오페라 공연을 하는 사회적 기업 ‘포스오페라’의 대표로서 전문 음악가 그룹과 노래운동을 연결하는 통로 구실도 모색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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