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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08 20:48 수정 : 2015.01.23 14:18

이승신 시인. 사진 김경애 기자

[짬] 복합문화공간 ‘더 소호’ 관장
이승신 시인

‘갓 스물 풋풋한 사랑을 시작한 음대생 서연(배수지)과 건축학도 승민(이제훈)은 나란히 길을 걷다 문득 비어 있는 동네 한옥의 마루에 걸터앉아 좋아하는 가수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을 이어폰으로 함께 듣는다. 그리고 “첫눈 오는 날 우리 이 한옥에서 또 만나자”고 약속한다.’

2012년 ‘첫사랑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400만 관객을 모은 화제의 영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에 등장했던 바로 그 한옥이 최근 문화공간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마음속 깊은 사랑의 한 조각씩을,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끝없이 사랑할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 모두의 환상 속 그 첫사랑의 집을 혼자 독차지하지 않고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으니까요.”

서울 종로구 누하동 103번지, 요즘 젊은층과 관광객들 사이에 가장 ‘뜨는 동네’인 서촌의 수성계곡 입구에 자리한 이 한옥의 소유주인 이승신(사진) 시인의 얘기다.

영화 ‘건축학개론’ 찍은 서촌 작은 한옥
입소문타고 관광객 몰려 ‘명소’ 인기
카페 겸 문화행사 장소로 대여하기로

인근 필운동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
20년 전 헐린 300년 고택 아쉬워 장만
‘글방’ 꾸몄으나 대중 요구로 공유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 ‘단가의 명인’ 손호연 시인과 함께 ‘모녀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씨는 한옥 인근 필운동에서 20년 가까이 복합문화공간 ‘더 소호’(The SOHO)를 운영하고 있다.

“서촌은 내 고향이자 삶터예요. 필운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미국 유학과 결혼으로 20여년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이 어머니가 지켜온 300년 고택 한옥이 도로로 편입되는 바람에 반토막만 남게 됐어요. 하는 수 없이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게 소호고요. 그래서 늘 마음 한구석에 한옥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남아 있었죠.”

그러다 몇 해 전 뒷골목을 살피던 그는 숨은 듯 자리한 스무평 남짓 작은 한옥을 발견해 ‘글방’으로 꾸몄다. 온화한 노부부가 ‘30년을 행복하게 산 정든 집이어서 떠나고 싶지 않다’는 한마디가 마음에 들어와 빚까지 내어 구했단다. 경복궁 서쪽 인왕산 아래 자리한 서촌은 조선시대 이래 고즈넉한 선비 동네로, 북촌 못지않게 한옥이 많았으나, 70~80년대 개발 바람을 타고 30평만 돼도 집장수들이 사들여 다세대 빌라 등으로 개축한 까닭에 자투리처럼 작은 한옥만 겨우 남아 있다.

“아마 2011년쯤이었겠죠. 영화를 찍겠다고 해서 두어달 빌려주고는 잊어버렸어요. 영화 제목도 입력해 놓지 않았으니 당연히 볼 생각도 못 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한옥과 제주도의 집도 덩달아 명소로 소문이 나고 있다는 기사가 났지 뭐예요.”

영화 <건축학개론>(오른쪽 사진)에서 대학 시절의 서연(배수지·왼쪽)과 승민(이제훈·오른쪽)이 빈 한옥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그러자 인터넷에 한옥 찾아가는 길이 나오기도 하고, 수리를 다 하면 찻집을 한다는 둥, 정작 주인도 모르는 소문들이 떠돌고 있었다.

뒤늦게 부랴부랴 ‘건축학개론’을 본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을 떨굴 만큼 감동을 했다. “그 애련한 사랑을 말로 다 할 수는 없으나 그 집에서 사랑의 추억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베로나를 문득 떠올리게 했어요.”

그 뒤부터 가끔 글방에 들를 때면, 어느새 지나던 관광객들이 뒤따라 들어와 탄성을 지르며 인증샷을 찍고 심지어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등 날이 갈수록 놀라운 현상의 연속이었다. 지난가을 ‘서촌 축제’ 때에는 주연배우들의 사진과 함께 ‘건축학개론 찍은 곳’이라고 안내한 커다란 펼침막이 내걸릴 정도였다.

하지만 2003년 작고한 뒤 오히려 주목받고 있는 어머니 손호연 시인을 알리느라 종종 일본과 미국을 오가는 분주한 일상에 쫓겨 정작 그 자신 세번 정도밖에 묵어보지 못한 ‘글방’을 선뜻 대중에게 공개하기는 주저스러웠다. 대대적인 수리를 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더 소호’에서 문학관, 미술관, 국내 최초 프렌치 레스토랑 겸 카페 등을 운영하며 불모지 같았던 서촌에서 17년 넘게 문화행사를 해왔고, 어머니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와 단가들을 알리려 애써온 게 20년이에요. 그런데 정작 가상의 첫사랑 이야기 한 편에 대중들이 이처럼 열광하는 것을 보면서 영화의 힘을 새삼 실감했어요. 한편으론 이 척박한 세상에 그런 사랑 하나 그리며 가슴 설레어 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지켜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때마침 문화 공연을 보여주는 카페를 하고 싶다는 예술인들의 제안을 받은 그는 한옥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북촌처럼 상업화만 될 것이 아니라 오밀조밀 골목길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인왕산 정기에 옛 조상들의 혼과 문향, 예술향이 살아 넘치는 서울의 대표적인 품격 있는 마을로 오래오래 보존되길 소망한다. 세상이 여러번 바뀐다 해도 그런 마을 하나쯤 나라의 자존심으로 있어야 한다”는 시인만의 서촌 사랑법이기도 하다.

“언젠가 주연배우 엄태웅씨와 일본 팬 미팅 요청을 들어주지 못해 내내 미안했는데 이제는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평소에는 전통차 카페로 운영하며 ‘첫사랑’ 이미지에 맞게 연인들의 프러포즈 장소를 비롯해 공연, 강연, 시낭송, 음악회, 전시회 등 문화 예술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대여도 할 작정이다. (02)722-1999.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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