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원 어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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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한국인 첫 인디언 보호구역 관리자 서진원 박사
수자원공사 근무 7년만에 사표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구직 1년반 만에 195번째 성공 미국 덕밸리 인디언 1300명 거주
댐이 들어서 연어 복원 과제인 곳
어류 전문가 채용 열달만에 소장
“외모 비슷해서인지 잘 대해 줘” 18일 산천어 축제가 한창인 강원도 화천에서 ‘토종 산천어 종복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서 박사를 만났다. 그가 일하는 덕밸리 인디언 보호구역은 네바다와 아이다호 주 경계에 절반씩 걸친 서울 2배 면적의 정사각형 땅으로, 쇼쇼니(쇼숀)족과 파이유트족 인디언 약 1300명이 산다. “연방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지만 경제, 문화, 교육, 사법부 등을 갖춰 자치정부 같은 구조를 지닌다. 4년마다 선출되는 추장 격인 기관장이 행정부를 이끈다”고 그가 설명했다. 어류학자인 그가 이곳에 오게 된 근본 이유는 당연히 물고기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약간의 무모함과 운이 없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뒤 귀국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어류생태 담당 연구원으로 7년 동안 일했다. 촉망받는 어류 전문가였지만 그는 7년 만에 사표를 냈다. 건설 위주의 조직인데다 생태에 대한 관심이 적어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미국 아이다호 전력회사 어류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수력발전 댐 17곳을 관리하는 직원이 2000여 명인데 어류 전문가가 30명가량 된다는군요. 한국수자원공사에는 직원 4000명 중 제가 유일한 어류 전문가였습니다.” 2011년 안정된 직장을 버린 그는 가족을 데리고 여행비자로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무 준비도 없었다. 퇴직금과 약간의 저축한 돈으로 2년쯤 버티면 직장을 구할 자신이 있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간신히 6개월 방문 허가를 얻었다. 미국에서 학위를 따고 한국의 유수한 기관에서 경력을 쌓은 것을 과신했을까, 입사 지원서를 내는 족족 떨어졌다. “직접 찾아가 면접을 한 것만 20번이 넘습니다. 왕복 20시간씩 차를 몰고 가서 대형마트 주차장 차 안에서 자기도 했는데….” 1년 반 동안 197번 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195번째 낸 곳에서 면접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동료가 ‘여기 한번 해보라’고 건네준 인디언 보호구역의 자리였다. 서부영화에서 봄 직한 야생말이 뛰어다니는 끝없는 황무지를 달려 사무실에 갔다. 어류학자를 뽑는데 ‘경력 과잉’이었다. 하지만 면접 후 10분 만에 합격을 통보받았다. 뛸 듯이 기뻤다. 비록 가족은 자동차로 2시간 반 떨어져 주말에만 만날 수 있지만 마침내 직장을 얻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도 유명한 연어·송어가 회유하는 컬럼비아강 지류인 스네이크강이 인근에 흐른다. 그러나 수많은 댐이 들어서 연어과 어류를 복원하는 것이 정부의 큰 과제다. 어류학자들에겐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이다. 스네이크강 상류 인근에 위치한 덕밸리 인디언 보호구역도 각종 댐 건설로 연어가 돌아오지 못한다. 대신 미국 정부는 인공호수를 3곳에 조성하고 여기에 무지개송어를 해마다 방류해 외부 낚시인들로부터 낚시면허 수입을 얻도록 했다. 낚시로 수입을 올린다는 점에서 덕밸리 인디언 보호구역은 화천과 비슷하다. 애초 자생지가 아닌 곳에 낯선 물고기를 풀어놓는 것도 같다. 산천어 축제의 원조인 화천은 애초 산천어가 살던 곳이 아니다. 만일 행사를 위해 풀어놓은 산천어가 관리 부주의로 하천으로 풀려나간다면 생태계 교란 우려가 있다. 그가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유는 그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그는 수정란을 처리해 염색체가 3쌍인 3배체 물고기를 생산해 행사장에 풀어놓을 것을 제안했다. 3배체 물고기는 애초에 불임이어서 환경에 누출돼도 번식하지 못한다. 그는 “3배체 물고기는 유전자에는 손을 대지 않고 염색체만 늘린 것이어서 유전자 조작 논란과는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류 전문가로 채용됐지만 열달 만에 소장으로 승진했다. 인디언 보호구역의 환경·생태 분야 핵심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 자리엔 따로 정년이 없다. 10년 뒤에 그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추장이 돼 있을지 모르죠, 하하.” 그는 “이곳에서도 한국인은 처음이지만 외모가 비슷해서인지 잘 대해 준다”고 말했다. “백인 문화와 좀 다르고 장난 좋아하는 아시아인 정서와 비슷한 게 있어요. 15분쯤 느긋하게 여유를 갖는 ‘인디언 타임’도 있고요.” 화천/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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