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에서 동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진영(왼쪽)·하채현(오른쪽)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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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완주 동상연구소 운영 이진영·하채현씨 부부
완주 동상면 산골마을 귀향 감농사
인문예술의집 열고 ‘인문예술’ 창간 ‘책다방 연리지’ 무인카페로 개방
글쓰기 강좌·특강·시서화전도 마련 하씨는 수원대 ‘91학번’으로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 졸업 뒤 노동 현장으로 들어가려고 한 선배에게 “어느 공장으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반응이 의외였다. 선배는 “이제 아스팔트에서 투쟁하고 위장취업해 노동운동하는 시대는 지났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살려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민 끝에 그동안 등한시했던 문학을 선택했다. 역사를 되짚어보니, 수많은 문인들이 시대의 불의에 맞서 감옥에서 희생했고, 문인의 목소리가 많이 받아들여진 시대일수록 좋은 사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함께 운동했던 지인들이 상당수 시골에 살고 있었다. 귀농·귀촌의 길을 찾던 그는 농대를 나와 고향에서 감농사를 짓는 남편 이씨와 2012년 결혼해 동상면에 정착했다. 하씨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기 삶의 의무를 다하고 있으면서도, 지역 사람들은 뭔가 모자란 것 같은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고 있다. 머리에 해당하는 수도권만 팽창하고, 팔·다리에 해당하는 지역은 죽어가고 있다. 피를 제대로 돌게 하려면 인문학이 필요하다. ‘지역이 중심이야’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인물예술’ 창간호에서 ‘인문학 정신’을 특집으로 싣고, ‘지역사회와 인문예술’을 기획한 의도다. 그는 지역 사회와 소통하면서 1년에 2번 책을 낼 참이다. 우선 자비로 ‘인물예술’ 600부를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고, 앞으로는 월 1만원 후원 회원과 정기구독(연 2만6천원) 회원을 모아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 문을 연 동상연구소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인문예술 글쓰기 강좌도 진행하고 있고, 오는 3월부터는 인문예술 특강도 완주군청의 지원을 받아 완주도서관에서 개강한다. 하씨는 “신문의 ‘신춘문예’도 글을 자주 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권력일 수 있다. ‘인문예술’을 자기를 표현하고 싶고 글을 쓰고 싶은 주부·학생들도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에서는 건물없는 학교인 인문예술학교도 개설하고 있습니다. 제도교육이라는 틀과 학벌이 없어져야 합니다. 삶에서 필요한 공부를 함께 모색하는 소모임이 학교여야 합니다. 자신의 삶과 괴리된 거대담론은 소용이 없습니다. 삶 속에 스스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삶과 정신에 균형을 맞춰가는 게 인문학이고, 거기에 격조를 높여주는 게 예술 아니겠어요?” 그는 21개월 된 아들이 갓난아기 때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날 마을 어른께서 “베트남 사람이 한국 사람처럼 생겼고, 한국말도 잘하네”라고 얘기했다. 농촌에 젊은 부부가 워낙 귀하다보니 결혼이주민이라고 지레 짐작한 것이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엄마가 서울에서 공부했으니, 아들도 서울로 보낼 거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한다. “왜 무한경쟁 속으로 아이를 밀어넣어야 하죠. 강남 대치동에 가면 다 좋은가요. 자사고·서울대를 들어가야 아이가 행복해 할까요.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될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그때까지 사계절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배우게 할 겁니다. 자연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자존감을 갖도록 키우고 싶어요.” 지난해 4월 문을 연 무인카페 ‘책다방 연리지’는 남편이 운영하는 연리지 감농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10만평의 야산에 수백년생 감나무가 자생하고 있는데 유난히 나무끼리 잘 접이 붙어 ‘연리지’가 많단다. 서울과 지역, 중진과 신진, 한민족과 다문화간에 서로 벽을 만들지 않고 소통해야 한다는 바람도 이름에 담았다. 완주군 806번 시내버스 종점인 이곳은 책도 보며 편히 놀다가 가는 곳이다. 커피·코코아·쌍화차 한 잔에 3천원, 찻값을 받는 사람은 따로 없는데 지금까지 별 탈없이 지역의 ‘명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씨는 “한 번 찾은 분들은 꼭 다시 방문한다. 사람들이 머리가 복잡해 쉬고 싶을 때 찾아갈 곳에 목말라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책다방 옆에는 서예관도 있다. 산골에서 서예작품을 볼 기회가 적어 5년 전 남편 이씨가 마련했다. 오는 5월에는 ‘너른뫼 구중서 시서화 인문예술전’을 연다. 원로 문학평론가인 구 교수가 직접 짓고 쓰고 그린 작품을 초대하는 전시회다. 하씨의 대학 은사인 구 교수는 그가 ‘문학’을 다시 시작하고 ‘인문예술’을 발행하는 동기를부여해준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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