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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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해남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
“함께 먹고 나누니 절도 하심” 깨달음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책 출간 인근부대 관심사병·청소년들 보듬어
함께 밥짓고 흉도 보며 냉정한 조언
참여연대 공동대표도 맡아 실천행 지난해 일지암에서 멀지 않은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그는 도반들과 달려가 손수 떡국을 공양했다. “3천명에게 직접 공양을 해보니, ‘그동안 왜 그렇게 생각에만 힘을 주고 살았을까. 밥을 나눠주고 함께 먹으니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절로 하심이 되고, 분별심이 없어지는 것을’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왜 밥상에서의 교제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는지 새삼 깨달았다”고도 했다. 중국 한문 고전을 외워서 내는 앵무새의 깨달음이 아니라 사유와 감성으로 살려낸 그만의 깨달음이 느껴지는 일화다. “스님을 출가자라고 해서 세간을 떠난다고 하는데, 그걸 사람들과 등지고 사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있다. 불교는 그게 아니다. 잘못된 가치관과 삶의 행태를 떠나자는 것이지, 세상과 사람들에게 무관심하자는 게 아니다. 무소유·검소·청빈에만 머무는 것이 불교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그것은 수행자의 기본이지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일체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게 붓다가 선언한,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표다. 따라서 출가자는 세상을 품고 수행해가야 한다.” 그는 문사수(聞思修)를 중시한다. 문사수는 먼저 듣고, 이것이 합리적인지를 사유하고, 그 뒤 실천하는 불교 수행의 3단계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나의 말도 의심하고 헤아려 보라’고 했다. 사유하며, 생각하며 살라는 것이다.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과거를 조사해 보았더니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왜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을까. 바로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조직의 명령을 성실하게 따랐을 뿐이지만, ‘사유하지 않은 죄’를 범한 것이다. 지금 우리 일상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사고의 물구나무서기를 권한다. 다양하게 생각하고, 낯설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세뇌당한 관습적 사고와 태도를 내던지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크게 보라는 것이다. 이런 냉철한 사유와 이성, 합리적 사고가 없다면, 아름다운 풍경조차 종교를 망치고, 명상도 환각제일 뿐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어설픈 위로는 개인을 나약하게 만들고 탐욕과 독점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사회구조에 면죄부를 준다. 그러므로 아프다고, 괴롭다고 말하는 이들은 위로받기 전에 냉엄하게 스스로의 문제를 진단해 보는 게 좋다. 진정한 힐링은 나를 내 삶의 주체로 세우고 독창적으로 살아갈 때 가능하다.” 그의 말은 방황하고 상처 많은 이들에게 냉정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가 삶에서까지 그렇게 까칠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일지암을 찾은 청년들과 손수 아궁이에서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고, 도토리묵을 만들고 함께 청소를 한다. 소년들과 함께 부모나 교사에 대한 흉도 본다. 그러면 더할 나위 없이 궁합이 맞아 친해지곤 한다. 법인 스님을 믿고 자기 아들을 일지암에 맡긴 부모가 보면 놀랄 일이겠지만, 며칠 뒤 환하게 밝아진 아이의 모습을 보면 이를 시비할 수는 없다. 일지암엔 식사를 준비해주는 공양주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일지암에 온 주부들은 먼저 “내일 아침은 무엇으로 준비할까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그냥 주무시라”고 답하고, 아침이면 손수 흰죽을 쑤어 내놓는다. 집을 떠나 잠시나마 부엌에서 해방되고 싶은 주부의 마음을 어느 남편보다 더 깊게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지암이 ‘차의 성지’인데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했다”며 손수 내린 더치커피를 내놓는다. 법인 스님은 지난 6일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세간 나들이가 잦아질 예정이다. 깊은 사유와 이심전심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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