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16 19:09
수정 : 2015.03.16 21:01
|
서울 서교동 댄서스 라운지에서 공연 기획안을 논의중인 오후의 예술공방 회원들. 맨 왼쪽부터 안무 담당 김지정·손나예씨.
|
[짬]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무용공연
오후의 예술공방 회원들
“2014년 4월16일, 그리고 벌써 일년,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있지만,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질문이다. 그런데 온몸으로 그 답을 표현하고자 애쓰는 30대 젊은 여성 무용가들이 등장했다. 17·18일 세월호 1주기 추모 무용공연을 펼치는 ‘감성스터디살롱-오후의 예술공방’(예술공방) 회원 20여명이다.
‘아직 해갈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슬픔과 그 안에 담긴 삶의 애잔한 파편들이 위로의 자장가처럼-객석으로, 팽목항으로 흘러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욱한 움직임이겠지만, 이 작은 노력들을 통해 1년 뒤 다시 돌아올 우리의 봄이 너무 시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연 제목 ‘팽목의 자장가’에는, 특히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다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잠시나마 평안의 시간을 전하고 싶은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현대무용 전공한 여성 20명 모여
독서모임 퉁해 주제의식 찾고 공유
첫 공연으로 ‘팽목의 자장가’ 기획
안산·팽목항 답사도 하며 공감 노력
소셜펀딩 통해 기금 모아 전달 예정
“유가족들에게 ‘잊지 않겠다’는 다짐”
이들과의 첫 만남은 지난 5일 서울 서교동 풀꽃평화연구소 건물 3층에 자리한 댄서스 라운지에서 이뤄졌다. 오후의 예술공방 회원들의 공부방이자 연습실이다. 공연을 하기에는 좁아 보이는 공간이다. 실제로 입장 가능한 관객은 최대 50명 안팎이라고 한다.
“사실 공간 규모만큼이나 소박한 공연이에요. 다만, ‘잊혀지는 게 가장 두렵다’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좀더 많은 사람이 함께 기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유가족들에게도 알리고 ‘소셜 크라우드펀딩’도 하기로 했어요.”
예술공방의 대표인 천샘(39)씨와 권지영씨, 총연출 담당인 여행작가 채미정씨 등 3명은 지난주 안산과 진도 팽목항을 직접 찾아가 가족들을 만나고 왔다. “공연 취지를 말씀드리고 포스터를 전했어요. 가족들 몇분이라도 공연을 함께 해주셨으면 해서 초대도 했구요.”
규모는 비록 소박할 수도 있지만, ‘예술과 사회의 접목’이라는 이들이 모인 뜻과 지금껏 노력해온 과정은 예사롭지가 않다.
“현대무용이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보니 이론보다는 실기, 몸을 단련하고 테크닉을 익히는 데 치중하잖아요? 심지어 무용학 박사 논문조차도 이론서라기보다는 춤 동작을 예시하거나 분석한 도형이 대부분이니까요. 상대적으로 철학이나 인류학 같은 인간에 대한 이해, 역사나 사회문제 같은 현실에 관심이 부족하다는 ‘갈증’이 있었죠. 그래서 ‘책을 읽자’, 인문학적 소양과 견문을 넓히는 독서모임부터 시작했어요.”
‘초경량 지식 투척 프로젝트’로 이름지은 이들의 독서모임은 2013년 8월 매월 1회 3명씩 발제를 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물론 ‘무용’이지만, 절반 정도는 다른 전공이나 다른 길을 돌고 돌아 뒤늦게 무용의 세계로 들어온 특징도 있다. 어릴 때부터 몇몇 대가들과 연결된 도제 시스템 속에서 자라는 우리 무용계에서는 ‘아웃사이더’로 분류되는 이력의 소유자들이 많은 셈이다.
|
지난 주말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아가 가족들에게 ‘팽목의 자장가’ 공연 포스터를 전달한 대표 천샘(왼쪽)씨와 회원 권지영씨.
|
카페를 전전하며 불안정하게 진행됐던 독서모임은 지난해 11월 한 독지가로부터 전용 공간을 ‘희사’받으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세월호 추모 작품을 구상하기에 앞서 ‘안무자 스터디 시리즈’를 통해 <그을린 예술>(심보선), <불안>(알랭 드 보통),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박상은) 3권을 함께 읽고 토론을 했어요. 그 결과,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무기인 무용으로 메시지를 표현하기로 했어요. 주제별로 독무, 듀엣, 트리오, 3개 팀이 꾸려졌지요.”
독무를 직접 안무하고 연기하는 손나예(33)씨는 “작품 제목 ‘나는 예술가입니다’가 조금은 엉뚱할 수도 있는데, 세월호 참사를 이해하고자 고민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저 자신과 우리 주변의 현실에 대한 표현이에요. 어릴 때부터 줄곧 무용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무용 예술가’로만 살 수 없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저만의 문제가 아니더군요.” 손씨는 춤만이 아니라 독백, 관객들과의 대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을 구성해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다고 했다.
듀엣작품 ‘수송’(김문주·오윤형 출연)의 안무가 김지정(33)씨는 독서모임에서 공유한 ‘불안’이라는 코드를 주제로 삼았다. “바다에서 불안하게 이동하는 세월호의 ‘수송’ 이미지와 참사 이후에 드러난 부패, 은폐, 정부의 거짓말 등등을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지위 욕망’(탐욕)과 관련시켜 해석해봤어요.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나약한 면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숙한 길을 택할 수 있는지가 지금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요?”
트리오작 ‘슬픔 속으로’(천샘·김하람·박성은 출연)를 안무하고 연기도 하는 천씨는 세월호 유족을 비롯해 삶 속에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슬픔의 무게를 연결과 공유를 통해 나누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을 예정이다.
공연 입장권은 펀딩사이트 와디즈(wadiz.kr/Campaign/Details/615)에서 구입할 수 있고, 후원 규모에 따라 힐링스트레치와 마스터클래스 강의 수강권도 증정한다.
ccandori@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