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빈양.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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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왕따 상담’ 앱 만든 대학생 김성빈 양
이유 몰라 “죽고 싶다” 자살 유혹도
피해사례 기록해 부모가 개별설득 고3 입시 대신 ‘왕따돕기’ 앱 몰두
개발비 3천만원·멘토들 재능기부 ‘기적’
‘홀딩 파이브’ 4천여명 고민 상담 활발 한번은 같은 반 아이가 욕을 하며 가위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다행히 피했지만 섬뜩했다. 부모가 학교에 와서 담임선생님과 상담하고 간 뒤엔 따돌림이 더 심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밤중에 거실을 불안한 몸짓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파트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잠시면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어머니는 밤마다 딸 곁에서 잤다. 창문 단속도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딸을 보다못한 아버지가 나섰다. 딸에게 피해 사실을 자세히 적으라고 했다. 피해를 당할 때마다 육하원칙에 따라 자세히 기록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학교에 와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친구들을 설득했다. 아버지는 “너희들을 용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왔다. 더 이상 괴롭히면 법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사과했다. 서서히 딸은 왕따의 짙은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성빈(19·사진·서울여대 기독교학과 1)양은 그렇게 고교 1학년을 지옥처럼 보냈다. 그때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내 편에서 들어주는 친구가 한 명만이라도 있었으면….” 지난해, 고3 때였다. 그는 고1 때부터 구상한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자신과 같이 왕따의 괴로움을 당하는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는 앱이다. “결국 우리 이야기를 우리끼리 서로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친구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만류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지금 10대니까 10대의 마음을 제일 잘 알아요. 대학에 진학하면 다른 관심사가 생길 텐데, 지금 열정이 있을 때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발비가 3000만원이나 필요했다. 선뜻 착수하지 못했다. 그때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어른들은 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정작 필요할 땐 옆에 없어요. 세월호 희생자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해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앱을 만들어 한 명의 목숨이라도 구하고 싶었어요.” 이름을 정했다. ‘홀딩 파이브’다. 심리학 용어인 ‘홀딩 이펙트’(어려운 순간 껴안아 위로함)와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골든타임 5분’을 조합했다. 위기의 순간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5분간 껴안아준다면 많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앱 개발사 대표가 그의 뜻을 높이 사 재능기부로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첫번째 조그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사연을 올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줄 ‘해피인’(멘토)도 생겼다. 무작정 메일을 보내 도움을 청하자, 그룹 지오디(GOD)의 멤버 김태우씨를 비롯해 강지원 변호사, 성우 김종성·서혜정씨 등이 선뜻 받아주었다. 완성된 앱에 사연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미 회원이 4000명 가까이 된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최근 글을 올렸어요.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자해를 거듭하고, 마침내 이 세상엔 아무도 자신의 편이 없다고 생각했대요. 자살을 시도하려는 순간 이 앱에 글을 올리곤 ‘아! 세상엔 내 편도 있구나’ 하고 느끼고 세상에 맞서 싸우겠다고 결심했대요.” 그동안 수많은 사연이 홀딩 파이브에 올라왔다. ‘은따’(은근한 따돌림)나 ‘전따’(전교생이 따돌림)를 당하고 있다거나, 못생김에 대해 고민하거나, 말을 더듬거나, 틱 장애에 시달리거나, 가정불화로 고민하거나, 심지어 임신의 불안에 시달리는 여학생의 고민이 홀딩 파이브에 쏟아졌다. 멘토들은 직접 댓글을 달아주기도 하고, 미리 저장해놓은 멘토의 메시지를 상황에 따라 고민을 올린 이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욱하는 기질의 청소년들에겐 빠른 조언이 효과적이죠.” 최근 자신의 왕따 경험과 홀딩 파이브에 올라온 사연을 모은 책 <홀딩 파이브 도와줘!>(마리북스)를 펴낸 김양은 “혼자인 줄 알았던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지지자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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