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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자연 닮은 한국차 맛 세계에 알리는 23년지기 도반”

등록 2015-05-11 19:02수정 2015-05-11 20:43

효암산방 주인 홍경희(사진 왼쪽)씨와 차로 맺어진 23년 도반 안선재(73·본명 브러더 앤서니·오른쪽) 수사.
효암산방 주인 홍경희(사진 왼쪽)씨와 차로 맺어진 23년 도반 안선재(73·본명 브러더 앤서니·오른쪽) 수사.
[짬] 한국차로 맺어진 도반 홍경희·안선재 씨
하얀 이팝나무 꽃이 실비처럼 날리고, 희고 붉은 철쭉들이 만발한 지리산 노고단 아래의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뒷산 자락. 찔레꽃 향기 싱그러운 효암산방차원에는 주말마다 한국 전통차를 만드는 제다 체험을 하려고 외국인들이 몰려든다.

지난 주말에는 주한 영국대사 찰스 존 헤이 부부가 두 딸(아바와 지젤)과 함께 다녀갔고, 오는 주말에는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회원 20여명이 찾는다. 한국전쟁 전문가 캐스린 웨더스비 존스홉킨스대 교수, 중국에서 ‘보이차왕’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리 호프먼, 주한 독일대사 부인 등도 다녀갔다. 이 때문에 주말이면 효암산방 주인 홍경희(58)씨와 차로 맺어진 23년 도반 안선재(73·본명 브러더 앤서니) 수사는 다원을 비우지 못한다. 특히 4~5월이면 이른 아침부터 두 사람은 방문객들과 함께 어린 찻잎을 따서 가마솥에 덖고 비비고 말리는 작업으로 봄날 하루가 짧다.

차연구가 홍씨·귀화한 영국인 안 수사
1993년 천상병 시인 장례 때 첫 만남
반야로차도문화원서 함께 ‘제다’ 수업

10여년 전 구례에 효암산방차원 열어
주한 외교관 등 외국인 제다 체험 인기
“직접 손으로 덖는 감각과 향에 매력”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한국 전통차를 외국에 알려왔다. 2007년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국 전통차를 소개한 다서 <한국의 다도>(The Korean Way of Tea)를 낸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초의 선사의 ‘차신전’과 ‘동차송’, 이목의 ‘차부’ 등을 영어로 엮은 <한국의 전통차>(Korean Tea Classics)를 냈다. 또 미국과 유럽 등지를 여행하며 한국 전통차에 대한 강의를 해오고 있다.

“외국인들이 뜨거운 가마솥에서 찻잎을 덖고, 꺼내서 비비고(유념), 말리기를 9번 반복하는 전통 제다법인 ‘구증구포’를 체험하고 난 뒤 올해 만든 해차를 대접하면 너무 행복해해요. 특히 차를 비빌 때 손에 닿은 촉감과 차향을 좋아하더군요.”

홍씨는 “얼마 전 헤이 영국대사 부부에게 곡우 전에 만든 우전차를 내놓았더니 ‘한국 전통차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러자 안 수사가 “한국 전통차는 좀 더 자연의 맛에 가깝고 환경친화적이어서 더 믿음을 주는 것 같다”고 거든다.

차 연구가이자 다도 강사인 홍씨는 고교 시절 고향인 김제 금산사에서 도법 스님에게 처음 차를 배웠다. 서울에서 고교 국어교사로 일하면서 한국 현대 차도를 중흥시킨 효당 스님(1904~79·전 다솔사 주지)의 차맥을 이어가는 반야로차도문화원에서 본격적으로 제다를 배웠다. 10여년 전 아예 구례로 내려와 차를 재배하고 있다. 그의 23년 지기인 안 수사는 영국 옥스퍼드대 석사 출신의 영문학자로 젊은 시절 프랑스 수도원인 테제공동체의 수사가 되었고, 80년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 문화에 빠져 94년 한국으로 귀화한 뒤로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 고은 시인의 <만인보>와 <화엄경>,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서정주 시인의 <밤이 깊으면>,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눈>, 이문열 소설가의 <시인> 등 한국 시·소설 30여권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인에게 알려왔다. 오래도록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로 지내다 정년퇴직한 뒤, 서강대 명예교수와 단국대 석좌교수로 있다.

두 사람은 93년 4월 천상병 시인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났다. 그 뒤 반야로차도문화원에서 채원화 원장으로부터 함께 차를 배우면서 도반이 되었다. “그 전에도 한국 전통차를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것은 홍 선생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홍 선생이 나를 해마다 사천, 화개, 구례, 보성 등에 데려가서 차를 체험하게 했지요.”

안 수사는 평소에는 서울 화곡동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출신 수사 3명과 함께 지내지만, 틈만 나면 효암산방으로 내려온다. 그는 “지리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물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홍 선생이 오지 말라고 할 때까지 올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한국 전통차의 매력은 ‘자연’과 ‘손’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차나 일본차는 기계로 대규모로 만들지만 한국차는 손으로 만들잖아요. 그래서 자연과 일치된 것이죠. 그런데 영국·중국·일본 차는 생활차인데 한국차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일반인들은 즐겨 마시지 않으니까요. 또 세리머니 없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효당 스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잖아요.”

홍씨도 “요즘 차에서 보여주는 형식이나 격식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생활차는 굳이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효당 스님도 ‘차는 맛있게 만들어서 맛나게 우려서 맛나게 마시면 된다’고 했다”고 일러준다.

두 사람은 앞으로 발효차인 황차에 대한 영문책을 낼 계획이다. 10년 전부터 홍씨는 화개에서 내려오는 전통제다법을 연구하고 있다.

안 수사에게 홍씨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그는 “심진 스님의 노래 ‘나에게 친구가 있었네’의 가사에 나오는 친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재미없는 사람인데 홍 선생이 날 돌보고 참아주는 걸 보면 놀라운 사람”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홍씨가 웃음으로 받았다. “요즘은 안 교수와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우리는 차로 맺어진 오랜 도반입니다. 둘 다 독신이기 때문에 활동하기 편하고 묶어서 가기도 편하고….”

구례/글·사진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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