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암산방 주인 홍경희(사진 왼쪽)씨와 차로 맺어진 23년 도반 안선재(73·본명 브러더 앤서니·오른쪽) 수사.
[짬] 한국차로 맺어진 도반 홍경희·안선재 씨
1993년 천상병 시인 장례 때 첫 만남
반야로차도문화원서 함께 ‘제다’ 수업 10여년 전 구례에 효암산방차원 열어
주한 외교관 등 외국인 제다 체험 인기
“직접 손으로 덖는 감각과 향에 매력”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한국 전통차를 외국에 알려왔다. 2007년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국 전통차를 소개한 다서 <한국의 다도>(The Korean Way of Tea)를 낸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초의 선사의 ‘차신전’과 ‘동차송’, 이목의 ‘차부’ 등을 영어로 엮은 <한국의 전통차>(Korean Tea Classics)를 냈다. 또 미국과 유럽 등지를 여행하며 한국 전통차에 대한 강의를 해오고 있다. “외국인들이 뜨거운 가마솥에서 찻잎을 덖고, 꺼내서 비비고(유념), 말리기를 9번 반복하는 전통 제다법인 ‘구증구포’를 체험하고 난 뒤 올해 만든 해차를 대접하면 너무 행복해해요. 특히 차를 비빌 때 손에 닿은 촉감과 차향을 좋아하더군요.” 홍씨는 “얼마 전 헤이 영국대사 부부에게 곡우 전에 만든 우전차를 내놓았더니 ‘한국 전통차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러자 안 수사가 “한국 전통차는 좀 더 자연의 맛에 가깝고 환경친화적이어서 더 믿음을 주는 것 같다”고 거든다. 차 연구가이자 다도 강사인 홍씨는 고교 시절 고향인 김제 금산사에서 도법 스님에게 처음 차를 배웠다. 서울에서 고교 국어교사로 일하면서 한국 현대 차도를 중흥시킨 효당 스님(1904~79·전 다솔사 주지)의 차맥을 이어가는 반야로차도문화원에서 본격적으로 제다를 배웠다. 10여년 전 아예 구례로 내려와 차를 재배하고 있다. 그의 23년 지기인 안 수사는 영국 옥스퍼드대 석사 출신의 영문학자로 젊은 시절 프랑스 수도원인 테제공동체의 수사가 되었고, 80년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 문화에 빠져 94년 한국으로 귀화한 뒤로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 고은 시인의 <만인보>와 <화엄경>,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서정주 시인의 <밤이 깊으면>,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눈>, 이문열 소설가의 <시인> 등 한국 시·소설 30여권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인에게 알려왔다. 오래도록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로 지내다 정년퇴직한 뒤, 서강대 명예교수와 단국대 석좌교수로 있다. 두 사람은 93년 4월 천상병 시인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났다. 그 뒤 반야로차도문화원에서 채원화 원장으로부터 함께 차를 배우면서 도반이 되었다. “그 전에도 한국 전통차를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것은 홍 선생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홍 선생이 나를 해마다 사천, 화개, 구례, 보성 등에 데려가서 차를 체험하게 했지요.” 안 수사는 평소에는 서울 화곡동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출신 수사 3명과 함께 지내지만, 틈만 나면 효암산방으로 내려온다. 그는 “지리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물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홍 선생이 오지 말라고 할 때까지 올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한국 전통차의 매력은 ‘자연’과 ‘손’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차나 일본차는 기계로 대규모로 만들지만 한국차는 손으로 만들잖아요. 그래서 자연과 일치된 것이죠. 그런데 영국·중국·일본 차는 생활차인데 한국차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일반인들은 즐겨 마시지 않으니까요. 또 세리머니 없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효당 스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잖아요.” 홍씨도 “요즘 차에서 보여주는 형식이나 격식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생활차는 굳이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효당 스님도 ‘차는 맛있게 만들어서 맛나게 우려서 맛나게 마시면 된다’고 했다”고 일러준다. 두 사람은 앞으로 발효차인 황차에 대한 영문책을 낼 계획이다. 10년 전부터 홍씨는 화개에서 내려오는 전통제다법을 연구하고 있다. 안 수사에게 홍씨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그는 “심진 스님의 노래 ‘나에게 친구가 있었네’의 가사에 나오는 친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재미없는 사람인데 홍 선생이 날 돌보고 참아주는 걸 보면 놀라운 사람”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홍씨가 웃음으로 받았다. “요즘은 안 교수와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우리는 차로 맺어진 오랜 도반입니다. 둘 다 독신이기 때문에 활동하기 편하고 묶어서 가기도 편하고….” 구례/글·사진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