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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15 19:43 수정 : 2015.06.15 22:16

심용석(왼쪽) 씨와 백덕열(오른쪽) 씨.

[짬] 독도경비대 출신 대학생 심용석·백덕열 씨

출렁이는 동해 바다를 보며 결심했다. 제대 후엔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하자고…. 어렵게 입대했다. 무려 28 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독도경비대였다. 한-일 외교 분쟁의 최첨단에서 군 생활을 했다. 둘은 학교도 다르고, 희망도 달랐지만, 한 내무반에서 생활하며 뜻을 같이했다. 망언을 일삼는 일본에 대해 뭔가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나란히 제대한 심용석(22·인천대 중어중문학과 2)과 백덕열(22·경희대 체육학과 2) 둘은 드디어 할 일을 찾았다. 그들의 목표는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는 것. 방법은 미국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하며 미국 사회와 언론에 일본의 과거사를 호소하는 것이다. 가능할까? 효과가 있을까?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했다. 오는 토요일 둘은 미국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를 탄다.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젊기 때문에 거침이 없다.

28대1 경쟁 뚫고 입대한 내무반 동기
“미국 대륙 자전거 횡단하며 캠페인”
인정·사과·동행 ‘3A 프로젝트’ 세워

20일 출국 LA~뉴욕 80일 여정 도전
SNS 생중계·현지인 플래시몹 등 예정
이순신 동상 앞에서 둘만의 출정식도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동부 뉴욕까지 자전거로 횡단하는 데는 80일이 걸린다. 6000여㎞의 거리다. 오는 20일 한국을 비행기로 출발해 9월8일 돌아오는 일정이다. 낭만적인 하이킹이 아니다. 매우 위험하고 고된 일정이다. 하루 평균 100㎞를 달려야 한다. 텐트를 싣고, 식량을 싣고 달려야 한다. 더운 사막도 지나가야 하고, 산맥도 넘어야 한다. 둘은 아직 미국을 가본 적도 없다. 매일매일 미국 지도를 펴놓고 도상훈련을 한다. 둘은 자전거로 들르는 마을과 도시마다 미국 시민을 상대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또 일본 대사관 등에서 항의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번 미국 횡단의 이름은 ‘3A-프로젝트’다.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 시작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색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자, 정치인, 운동가들뿐 아니라 국제적인 여론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무대로 미국이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범죄를 인정(Admit)하고, 사과(Apologize)하고, 피해자들의 혼과 마음을 안고 동행(Accompany)하자는 취지다.

올해 3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소녀 이야기>를 함께 보며 미국에 대한 캠페인의 결심을 굳혔다.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을 직접 찾아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만나뵙고, 아픈 과거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분 가운데 두 분이 지난주에 돌아가시면서 생존자가 50분이라는 소식에 둘의 마음은 더욱 굳건해졌다.

심씨는 “독도에 근무하면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단순 인신매매의 희생양’으로 언급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했어요”라고 말한다. 백씨는 “일본 정부의 역사적 사실 왜곡과 부정, 책임 회피를 전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어쩌면 지금이 할머님들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 일본 정부의 시인과 사죄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안타까워한다.

이 둘은 미국을 횡단하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웨이보, 네이버 블로그 등 각종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자신의 움직임을 알릴 예정이다. 또 현지 자전거 동호회, 3A-프로젝트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함께 라이딩을 하고, 현지 언론사에 기사화를 요청할 생각이다. 미국 내 한인 동포들과 손잡고 일본 영사관이 있는 로스앤젤레스, 덴버, 시카고, 뉴욕의 네 곳과 일본 대사관이 있는 워싱턴에서 집회를 열고, 2인 시위를 통해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할 예정이다. 특히 6월24일(로스앤젤레스), 8월26일(워싱턴), 9월2일(뉴욕)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관련 집회를 열어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할 작정이다. 젊은이답게 이번 프로젝트에 맞는 음악과 율동을 만들었다. 율동은 현지인들에게 가르쳐줘서 플래시몹 형태로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자전거(트렉코리아)와 헬멧(루디 프로젝트)은 협찬을 받았다. 왕복항공권은 꽃을 팔아 벌었다. 지난겨울 각급 학교 졸업철에 도매시장에서 꽃을 싸게 사다가 포장해 팔아 200만원을 벌었다. 주말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았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을 통한 소셜펀딩을 통해서도 모금을 했다. 현지에서 잠은 교회나 민박, 텐트에서 해결하고, 식사는 칼로리 높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해결하려 한다. 문제는 체력이다. 심씨는 이번 학기 내내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30㎞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주말엔 200㎞씩 주행했다. 체대생인 백씨 역시 하루 평균 50㎞ 거리를 자전거로 주행했다. 둘은 체력을 점검하고 팀워크를 다질 목적으로 지난 5월 인천부터 부산까지 5일간 함께 자전거로 다녀오기도 했다. 미국 듀크대를 졸업한 지인인 김예훈(22)씨가 영어가 서툰 심씨와 백씨 대신 미국에 메일을 보내는 등 사전 준비작업을 도왔다.

“페달을 밟는 힘은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열정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지난 10일 협찬사로부터 미국 횡단에 함께할 자전거를 받은 둘은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에서 둘만의 조촐한 ‘출정식’을 했다. “12척의 배로 100여척의 왜선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그만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0도를 넘는 무더위도, 메르스의 공포도 둘에겐 문제가 아니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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