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6.23 19:04
수정 : 2015.06.2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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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미술가 신윤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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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재미 치유미술가 신윤주 씨
지난달 24일 남북 군사분계선을 넘어 임진각에 도착한 ‘위민 크로스 디엠제트’(WOMENCROSSDMZ) 대표단의 환영축제에서는 무대 배경으로 펼쳐진 색동 조각보가 시선을 끌었다. 이어 남과 북, 그리고 국제 여성활동가들이 각각 만든 세 개의 조각보를 이어 하나로 완성하는 ‘조각보 퍼포먼스’가 연출됐다. 이 퍼포먼스는 앞서 평양에서도 진행됐고, 이튿날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5 국제여성평화걷기대회 기념 학술포럼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역사적 진실과 정의’ 전시회의 개막식에서도, 17일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183차 정기 수요시위에서도 참가자들이 다 함께 조각보를 펼쳐 들고 연대를 다지는 행위극을 진행했다.
이 조각보 퍼포먼스는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중인 재미 치유미술가 신윤주씨가 기획한 ‘원 하트(하나의 마음) 프로젝트’의 하나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모아 남북 분단의 고통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다 함께 껴안고 평화를 이루자는 뜻을 담고 있다.
남·북·뉴욕 여성들 손바느질 조각
위민크로스디엠제트 행사 ‘상징’으로
국회 위안부 전시·수요집회 때도 ‘연출’
미대 시절 민중미술운동 참여한 경험
4년 전 40살에 맨몸으로 미국 건너가
소수자 다양성·고통 현장 찾아갈 것
“4년 전 맨몸으로 뉴욕에 건너갈 때 저 역시 마음에 상처가 있었어요. 몸도 힘들었고요. 그러다 ‘조각보’의 포용성과 상징성에 착안해 퍼포먼스를 하면서 누구보다 저 자신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어요. 그래서 제 작업을 ‘인터랙티브 소셜 힐링 아트’로 소개하고 있어요.”
광주에서 나고 자란 신씨는 1990년 전남대 사대에 입학해 미술교육을 전공한 뒤 미술학원 강사 등을 하면서 화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30대 후반부터 척추염으로 수년간 투병을 해야 했고 그 때문에 ‘결혼과 가정’이라는 평범하고 안정된 삶의 기대도 접어야 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지향했던 민중미술의 ‘사회참여’ 개념을 어떤 식으로든 키워가고 싶다는 작가로서의 욕망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2011년 마흔 살을 맞으며, 더 늦기 전에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보려고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어느 날 뉴욕에 먼저 정착한 친구의 권유로, 유니언신학대학에서 열리는 우리 전통 살풀이춤 공연을 보러 갔다가 현경 교수를 만난 게 ‘행운’의 시작이었어요.”
그때부터 여성신학자 현경 교수의 수업을 청강하게 된 그는 에코페미니즘과 소셜 아트를 접목시키고 싶다는 구상을 하게 됐고, 그 무렵 현경 교수가 대표를 맡고 있던 한인 여성모임 ‘조각보’에서 다양성의 조화라는 상징성을 포착해냈던 것이다. 유명 소셜아티스트 수잰 레이시의 퍼포먼스에 참여했던 경험도 도움이 됐다.
“원 하트 프로젝트는 ‘퀼트’와 ‘리튜얼’ 두 단계로 진행해요. 먼저 내 마음의 모양대로 천조각들을 이어 만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조각들과 서로 잇고 그렇게 이어가는 바느질 작업 자체를 통해 서로가 무한 연결되며 세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돼요. 그런 다음 완성된 조각보로 고통과 아픔의 현장이나 사물을 함께 덮는 의식을 통해서 연대와 치유의 공감을 나누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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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비무장지대(DMZ)를 걸어서 넘어오는 국제여성평화걷기대회를 진행한 ‘위민크로스디엠제트’(WCD) 대표단이 지난달 21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환영모임에서 신윤주씨가 기획해 뉴욕에서 제작해보낸 조작보를 펼쳐 들고 ‘하나의 마음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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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조각보 퍼포먼스의 첫선을 보인 이래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인권센터를 비롯해 학교, 한인 사찰과 교회, 소규모 학원 등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강연과 작업을 시도해왔다. 그 자신 서빙, 접시닦기, 청소 등 ‘알바’로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체험함 흑인·동성애·이민자 등 미국 사회의 소수자 정서와 인종 문제 등도 ‘조각보’ 안에 싸안을 수 있었다.
특히 지난 4월3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 대응해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고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뉴저지주 해컨색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 앞에서 펼친 퍼포먼스는 감동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재미 무용가 이송희씨 조각보를 배경으로 위안부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무’를 춘 뒤, 이 할머니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할머니들이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 아니냐”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장면이었다.
“80년 5월 10살이었지만 교사인 어머니와 정치활동을 한 아버지를 통해 듣고 자란 ‘광주항쟁’을 비롯해 ‘제주4·3’, 지난해 4·16 세월호 참사까지 한국 사회 전체가 겪어온 트라우마도 ‘치유의 조각보’로 감싸안고 싶어요. 그런 연대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잉태되는 전환이 이뤄지기를 바라면서요.”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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