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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30 19:13 수정 : 2015.07.01 11:10

대학생 김정철 씨.

[짬] 극한체험기 펴낸 대학생 김정철 씨

그는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이브를 꿈꿨다. 붉은색 산타 모자를 챙겼다. 혼자만의 드레스 코드였다. 파티 장소는 남미대륙 최고봉인 아콩카과(6962m) 정상이다. 파티 참가자는 그 혼자였다. 영하 수십도의 찬바람이 부는 정상까지 혼자 올라가야 한다. 2013년 12월24일 새벽, 대학생 김정철(28·동아대 국제관광경영 4)씨는 그런 부푼 꿈을 눈앞에서 접어야 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왼쪽 발가락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군 수색대 시절 동상의 경험이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니였다. 등산화와 양발을 벗어보니 발은 이마 눈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고, 피도 통하지 않는다. 다급해 입김을 불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한 시간만 올라가면 되는데,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배낭에 있던 예비 재킷을 꺼내 덮어쓰고, 며칠씩 신어 냄새 나는 양말에 입술을 맞대고 필사적으로 체온을 전달하려 했지만 자꾸 불안함이 몰려온다. 정상에도 못 올라가고, 발가락을 다 잘라야 하는가….

하지만 산신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 순간 뒤늦게 출발한 한국인 등반대를 만난 것이다.

고교 1학년 방황하다 어머니 쓰러져
뒤늦게 자신감 찾아 대학 진학 성공
미국 여행하며 ‘자연다큐 피디’ 지망

알바로 자전거 장만 오지탐험 도전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 완주
“살찐 욕심·마른 행복 바라니 불행”

등반대의 한 대원이 오리털 재킷을 열어 자신의 따뜻한 겨드랑이에 김씨의 얼어가는 발가락을 넣었다. 반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잃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김씨는 반가운 아침 햇살을 음미하며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준비한 산타 모자를 쓰고 ‘인증샷’을 찍었다. “아무리 춥고 피곤하더라도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동서남북으로, 그리고 한국을 향해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정상에 오르기 직전 위기의 순간엔 죽음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떨어야 했어요.”

남미 최고봉 단독 등정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목표를 이룬 김씨는 아콩카과를 오르기 전 더 극한의 체험을 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의 하나인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을 완주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소금사막이 있는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은 250㎞를 7일 동안 식량과 장비 등 필요한 짐을 짊어지고 외부의 도움 없이 달려야 하는 ‘최악의 마라톤 대회’로 알려져 있다. 이 사막은 지구에서 달의 표면과 가장 흡사해 우주인들이 훈련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는 33개 나라에서 150명이 참가했고, 그는 완주했다.

김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회 참가비를 벌었다. 출국하면서 가족 외 누구에게도 일정을 밝히지 않았다. 절대적 자유를 맛보기 위해서다. 물론 부모에게도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걱정을 끼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소금사막을 건너는 동안 운동화는 다 찢어지고, 발톱 8개가 빠졌다. 진통제 10개를 먹어가며 버틴 그다.

그는 고교 1학년 때 문제아였다. 공부는 전교 꼴찌였고, 어머니는 외동아들인 그의 방황에 속병이 나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2학년이 되어 그는 다짐했다. “반에서 10등 안에 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공부를 했어요.” 2학년 1학기 중간시험에서 그는 반에서 10등을 했다. ‘하면 되는구나!’라는 자신감에 그는 졸업하기 전엔 전교생 450명 가운데 13등까지 올랐다. 대학에 입학한 뒤 미국을 여행하며 세상이 넓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자연다큐멘터리 피디를 꿈꿨다. 혼자 북인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80쪽의 잡지를 만들어 자연다큐 전문 잡지를 찾아갔으나 퇴짜였다.

“지구의 아름다운 곳을 알리고,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동물도 좋아했어요.”

그는 사이클로 체력을 키웠다. 24살 때 아르바이트로 자전거를 마련했다. 잘 때도, 도서관에 갈 때도 그 자전거는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 2012년 투르 드 코리아 아마추어 부문에 출전했다. 도중에 두 차례 사고로 구급차 신세를 지기도 했다. 또 한 아웃도어업체에서 진행하는 오지탐험대 대원으로 선발돼 키르기스스탄의 산악 오지도 탐험했으니 나름대로 대단한 내공을 쌓은 셈이다.

지난해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김씨는 최근 자신의 극한 경험담을 담은 <야생 속으로>(어문학사)를 펴냈다. 그는 앞으로 몇가지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꼽는 것은 ‘개썰매를 타고 시베리아 벌판 횡단하기’다. 참으로 흉내내기 어려운 청춘이다.

“이제는 욕심을 다 내려놓을 수 있어요. 마음이 편해졌어요. 살찐 욕심과 마른 행복에 관심을 두고 살아서 불행한 거죠.”

야생 속에서 그는 강해진 듯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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