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11 19:18
수정 : 2019.08.15 17:07
【짬】 야생동물 전문가 최현명씨
|
<늑대가 온다> 저자 최현명씨.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늑대는 좋지만 외로운 늑대는 싫어요. 저 안 외롭거든요. 하하.”
‘늑대’나 ‘외로운 늑대’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최현명씨가 한 말이다. 그는 국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늑대 최고 전문가다. 올해로 늑대와 연을 맺은 지 꼭 20년이다. 1999년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서 운영하는 동물구조센터 이사를 맡아 중국에서 들여온 늑대 여섯 마리를 돌본 게 시작이었다. 갓 태어난 늑대 새끼를 자신의 집에서 100일 동안 우유를 먹이며 키우기도 했다. 그는 2002년부터 40회 가까이 몽골 초원이나 중앙아시아 고원 지대를 찾아 한국에선 1960년대 이후 찾아볼 수 없는 늑대 탐사를 했다.
|
<늑대가 온다> 표지. “초판 3천 부를 찍어 지금 700부 정도 남았어요. 숲이나 자연 해설가가 되고 싶은 분들이 많이 구매한 것 같아요.” 작가의 말이다.
|
한해 절반은 포유류와 새를 찾아 야생 탐사를 한다는 ‘늑대’ 최현명씨가 최근 <늑대가 온다>(양철북) 책을 냈다. 2002년 임완호 자연 다큐멘터리 피디와 동행한 45일 중국 네이멍구 늑대 탐사를 일기 형식에 담았다. 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자를 만났다.
이 책은 그의 첫 단독 저술이다. 12년 전에 <야생동물 흔적 도감>을 냈으나 공저였다. 왜 17년 전 일기가 단독 저술이 됐을까. “여태껏 늑대와 야생동물을 찾아 기록하는 데 매달렸어요. 어려서 제 꿈은 멋들어진 동물도감을 내는 거였죠. 지금 최종목표는 전업작가입니다. 그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앞으로 20권 정도 책을 쓰려고요. 이 책이 첫 권이죠. 두 번째는 추적자 즉 트래커입니다. 제가 야생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묶으려고 해요. 자제해야 할 정도로 에피소드가 많아요. 세 번째는 제가 경험하고 겪은 한반도 포유동물 40종을 정리할 겁니다.” 그간 찍은 야생동물 사진만 수천장이고 기록한 일기장도 수십 권이란다. 탐사 중 수집한 포유류 두개골도 30종이나 된다. “호랑이, 표범, 곰 정도만 없고 스라소니, 코사크 여우 등 웬만한 포유류는 다 있어요. 두개골엔 그 동물의 생활 습성이 담겼죠. 고양잇과는 이빨이 30개나 되는 살육기계이죠. 날카로운 송곳니에 홈까지 파였고 어금니도 칼날 같아요.”
|
최현명씨의 야생 탐사 일기 중 일부. 최현명씨 제공
|
|
최현명씨 야생 탐사 일기. 최현명씨 제공
|
이번 여름에도 일반 여행객들과 함께 몽골 탐사를 다녀왔단다. “매년 45일 정도는 해외 탐사를 합니다. 방송사 자연 다큐멘터리 피디와 함께하죠. 제가 자문 겸 술상무입니다. 이번에는 뿔이 거대한 아이벡스 산양이 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회해 5m 앞까지 다가가 꽉 차게 사진을 찍었어요. 산양 입장에서는 재수가 없었을 겁니다. 야생동물한테는 사람 만나 좋은 일이 없거든요.”
탐사는 주로 발자국 흔적을 따른다. 새끼 굴까지 찾으면 그날은 운수대통이다. 추적하며 보고 들은 동물의 습성은 꼼꼼히 기록하고 그리기도 한다. 주로 홀로 동물을 쫓는 탓에 추적에 열중하다 길을 잃기 일쑤다. 4년 전 천수만 살쾡이 탐사 때는 야간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3m 높이 다리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졌단다. “밤 중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 오른쪽 다리만으로 차를 몰아 서울 집까지 왔죠. 일주일 정도 입원했어요.”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한 그는 초등학생 때는 직접 동물도감을 그렸다. “고향인 경주 강가에서 꼬마물떼새를 관찰하고 뒷산에서 멧비둘기 새끼를 잡아 키우기도 했죠. 초등 6학년 때 선생님이 꿈이 뭐냐고 해서 ‘늑대왕 로보이야기’를 쓴 시튼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시튼이 누구냐고 해 크게 실망했죠.”
|
최현명씨는 야생동물 화가이기도 하다. 최씨가 그린 스라소니. 최현명씨 제공
|
|
최현명씨가 중학생 때 직접 그린 동물도감. 최현명씨 제공
|
조경학 전공으로 석사까지 딴 그는 1998년 일하던 조경설계사무소를 그만뒀다. “딱 3년만 해서 동물도감을 만들 결심으로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들어갔죠.” 딱 3년이 20년이 넘었다. 야생 탐사로 생활은 되냐고 하자 “두 아이까지 네 식구 먹고살 정도는 된다”고 했다. “숲해설가협회에서 여는 포유류 강의를 제가 많이 해요. 환경부나 지자체에서 하는 자연조사 연구용역에도 참여하죠.”
동물 중엔 포유류와 조류를 특히 좋아하며 포유류는 단연 늑대를 좋아한다. 왜? “희소성과 야성 때문이죠.” 20년 탐사로 늑대에 대해 새로 알아낸 게 있냐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없어요. 다만 탐사 전에는 늑대가 낌새만 있으면 사람을 노리는 동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가축은 노리지면 절대 사람은 노리지 않는다고 확신해요.”
탐사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2003년 몽골 동부 헨티 산맥에서 늑대 무리 8마리가 일렬횡대로 서서 자신을 보는 모습을 포착했을 때란다. 그는 이 사진을 여태껏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다. “너무 소중해서 보관만 하고 있죠. 사진을 찍으며 한국 가서 자랑할 생각에 너무 행복했어요.” 어떻게 찍었을까? “제가 거리를 좁히려고 엉덩이를 눈에 대고 발로 내려갔어요. 그때는 늑대가 내가 ‘두발 동물’이란 걸 몰랐죠. 그러다 내가 필름을 꺼내려고 일어서는 순간 다 도망갔어요. 늑대는 영민해요. 사람이란 걸 알고 달아난 거죠. 늑대는 ‘두발 동물’ 인간에 공포를 느낍니다. 총을 앞세운 인간의 무차별 도륙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죠.”
1999년 중국 수입 늑대 돌보며 ‘인연’
갓난 새끼 집에서 우유로 키우기도
몽골·중앙아시아 40여회 야생탐사
‘늑대’로 불리며 자타공인 전문가로
20년 경험 첫 단독 저술 ‘늑대가 온다’ 내
“야생동물 전업작가로 20권 낼 계획”
자주 찾는 국내 탐사지는 강원 화천군 해산령 일대다. “평화의 댐 근처로 야생동물이 많아요. 보통 3박 4일 일정으로 혼자 갑니다. 잠은 텐트에서 자고 라면을 끓여 먹죠. 사향노루나 담비가 목표이지만 희귀해 보기 힘들어요. 희귀종을 쫓으면 덤으로 살쾡이나 오소리를 만납니다. 탐사 중 느낀 것과 증거 사진을 기록으로 남겨요.”
집에서 뭔가를 해야 할 때 눈이 온다는 뉴스가 들리면 화가 난단다. “엉덩이가 들썩여 글쓰기나 그림이 잘 안 됩니다. 눈 올 때 산에 가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동물은 백지에 기록하듯 눈에 흔적을 그대로 남깁니다. 눈에 찍힌 살쾡이 발자국을 보면 어떤 자세로 어떤 사냥감을 노렸는지 그리고 사냥이 성공했는지도 알 수 있어요.” 최적의 야생동물 탐사 시기는 12월과 6월이란다. “12월엔 잎이 떨어져 멀리서도 동물이 잘 보입니다. 6월에는 살쾡이나 너구리 오소리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 어미를 따라 아장아장 걸어 다니죠.”
|
최현명씨가 수집한 포유류 두개골. 최현명씨 제공
|
그가 쌓은 늑대 지식은 나라 밖이라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까? “저 정도 지식은 미국을 가면 마니아 수준에 불과해요. 우리는 부가가치가 생기지 않는 ‘야외생물학’에 관심도 지원도 없어요. 매우 낙후했죠.” 늑대를 쫓을 때 그는 자주 늑대 울음소리를 내곤 한다. 하지만 여태껏 늑대가 반응한 적은 한 번도 없단다. “미국 전문가들은 반응을 끌어내기도 합니다. 늑대 소리를 자주 들어 울음 묘사를 정확히 해서죠. 늑대들이 제가 내는 소리를 듣고는 아마 ‘지랄하네’라고 할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야생동물에 대한 배려 하나를 꼽아달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에서 늑대나 스라소니 등 카리스마 있는 포유류는 일제가 다 멸종시켰어요. 구한말 호랑이 사냥으로 늑대가 조금 늘었는 데 일제 강점기 때 내내 늑대 포획을 해 개체 수가 격감했죠. 지금 여우와 반달곰은 부분 복원에 성공했어요. 야생동물에겐 서식지 확보가 가장 중요해요. 야생동물에 측은지심을 가지고 민통선 내외부와 백두대간 중심축 만이라도 야생동물 서식지로 지켜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돈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 때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물었다. “돈이 있으면 인도에서 푹 썩고 싶어요. 인도란 나라를 휩쓸고 싶어요. 사자와 호랑이를 같이 볼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죠. 그만큼 종 다양성이 풍부해요.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고양이과 10종이 있어요. 하지만 인도에는 14종이 있죠. 눈표범, 벵갈호랑이 아시아사자가 함께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