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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16 19:10 수정 : 2015.10.23 14:31

황진미의 TV 톡톡

코미디는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다. <개그콘서트>(한국방송2)의 새 꼭지 ‘민상토론’과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스비에스)의 ‘모란봉 홈쇼핑’은 국내 정치의 난맥상과 경색된 남북관계를 비춘다.

‘민상토론’은 “재밌는 이슈를 개그맨들의 시각으로 풀어본다”는 사회자 박영진의 가벼운 인사로 시작한다. ‘먹는 얘기’나 ‘물’에 관한 토론인 줄 알고 출연한 유민상과 김대성은 주제가 ‘무상급식’이나 ‘4대강 사업’인 걸 알고 아연실색한다. 찬성인지 반대인지를 묻는 다그침에 유민상은 곤혹해하고, 박영진은 말꼬리를 잡아 몰아간다. 그 결과 ‘자원외교’, ‘이명박과 이상득’, ‘문재인’ 등이 거명된다. 김대성은 “제까짓 게 뭘 알겠어요?”라며 비굴하게 빠져나간다. 박영진은 민감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이 의견은 <개그콘서트> 피디와 전혀 관계없는 유민상씨 개인의 의견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엔 유민상이 개그맨을 은퇴하고 정계에 진출하는 것이 기정사실인 양 선언된다.

<개그콘서트>(한국방송2)의 새 꼭지 ‘민상토론’
‘민상토론’은 정치적인 단어만 나열될 뿐 사실은 아무것도 발언하지 않는다. 때문에 풍자가 약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말할 수 없는 사태’에 대해 말하는 풍자를 수행한다. 유민상도 자기 견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민상은 “고소당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실제로 <개그콘서트>의 내용에 대한 강용석의 고소 이후, 정치풍자는 크게 위축되었다. “개그맨은 정치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바보 흉내나 내야 하냐?”는 박영진의 말은 정치풍자를 못하는 개그맨들의 자기비판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된 담론 환경을 풍자한다. ‘무상급식’이라는 ‘먹는 얘기’조차 첨예한 정치이슈가 되어버린 현실이나, 모든 토론이 극단적인 찬반논리하에 놓이는 현실을 비춘다. 사회자의 격앙된 말투와 곡해로, 출연자가 무엇을 말하든 짜여진 판 안에서 결론이 도출되는 토론 환경도 기막히다. 이는 종합편성채널 시사프로그램을 패러디 한 것이기도 하지만, 세월호를 비롯한 모든 삶의 이슈가 이분법적인 진영논리로 변질되어 버린 담론지형을 풍자하는 것이다. 심지어 토론 방청석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민감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수첩에 적는 사람까지 등장한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스비에스)의 ‘모란봉 홈쇼핑’
‘모란봉 홈쇼핑’은 북한에 홈쇼핑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가상으로 꾸민 콩트이다. 북한 특유의 비장한 어투와 불량품을 과대포장해서 파는 홈쇼핑 방송의 특징이 잘 어우러진 코미디로, 정승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러나 코미디 속 북한은 “강냉이죽에 간장” “뼈를 깎는 중노동”이 횡행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불량품을 팔려던 자는 녹화장에 난입한 군인들에 의해 끌려 나간다.

북한 소재의 코미디는 박정희 시절부터 있어왔다.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변천하여, 2000년대의 ‘꽃봉오리 예술단’은 촌스럽지만 밝은 느낌으로 북한을 ‘언젠가 만날 이웃 혹은 동포’의 이미지로 그렸다. 그러나 ‘모란봉 홈쇼핑’의 재현 방식은 1970년대 코미디의 복고로 읽힌다. 이는 5·24 조치 이후, 북한과의 교류가 사라진 시대를 반영한다. 즉 북한을 만날 수도 있고 만나야만 하는 이웃이나 동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코미디의 양식 속에 박제된 ‘전설의 통제사회’로 편리하게 재현한 것이다.

누구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라면 ‘민상토론’은 불가능한 개그이다. 북한을 동시대의 국제사회를 사는 이웃이자 언젠가 통일할 동포로 인식하는 사회라면 ‘모란봉 홈쇼핑’은 불가능하다. ‘개그’(gag)의 본래 뜻이 ‘재갈을 물리다’(언론을 탄압하다) 라는 사실에 새삼 오싹해진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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