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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28 19:04 수정 : 2015.05.28 19:04

황진미의 TV 톡톡

<프로듀사>(한국방송2)는 한국방송 예능국에서 일하는 프로듀서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12부작 드라마다.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한국방송2)를 연출한 서수민 피디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쓴 박지은 작가가 만난 로맨틱 코미디로, 방송국 신입사원의 분투기를 그린 직장드라마로도 재미있고, 김수현, 아이유, 공효진, 차태현의 로맨스도 풋풋하다.

예능국 피디들의 이야기를 그린 <프로듀사>(한국방송2)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김수현, 차태현, 공효진. 사진 한국방송 제공
<프로듀사>의 묘미는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흐릿하다는 점에 있다. 실제 예능프로그램들이 실명으로 언급되고, 박진영, 윤여정 등이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한국방송 건물과 시범아파트 단지가 배경으로 쓰이고, 실제 연예계를 둘러싼 산업지형이 그대로 배경이 된다. 드라마는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 2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제작 과정을 엿보는 듯한 재미를 느낀다. 이는 마치 ‘리얼리티 쇼’의 거울상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시청자들은 ‘리얼리티 쇼’의 내용이 진짜가 아님을 알지만, 과정의 리얼함을 즐긴다. <프로듀사>의 경우는 반대다. 시청자들은 이것이 드라마이며 과정이 허구임을 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리얼한 자기반영물일 수밖에 없음에 재미를 느낀다. 이러한 시도는 영화에서 먼저 있었다. <여배우들>은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여배우들을 통해, 엿보기의 재미는 물론이고 이중의 허구 속에 묻어나는 진실을 안겨주었다.

<프로듀사>는 교양프로그램 <다큐 3일>(한국방송2)의 카메라가 인물들을 찍고 있다는 설정이나 모큐멘터리 기법(허구를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다큐 방식)을 일부 도입하여, 현실과의 경계를 더욱 흐릿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설정이 진짜 로맨스가 된다’는 핵심서사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현실과의 경계 흐리기로 가장 큰 효과를 본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간접광고의 문제다. 드라마는 협찬받은 상품을 광고하는 효과뿐 아니라, 자사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내부광고 효과를 낸다. ‘현실을 반영하는 허구’가 아니라, ‘현실의 힘을 발휘하는 허구’가 된 것이다. 즉 허구가 곧 현실이다.

예능국 피디들의 이야기를 그린 <프로듀사>(한국방송2)의 주인공 아이유. 사진 한국방송 제공
<프로듀사>가 하필 예능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는 점도 시사점이 크다. 그동안 드라마국을 그린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나 보도국을 그린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등이 있었지만, 예능국을 그린 드라마는 없었다. 이는 예능프로그램을 천대해온 분위기와 관련 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예능프로그램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내가 그동안 예능을 무시했는데, 수십년간 드라마에 출연해도 못 알아보던 나를 예능 출연 1년 만에 다 알아본다”는 극중 윤여정의 말이 사태를 요약한다. 그뿐이 아니다. 예능프로그램은 콘텐츠를 창출하는 트렌드세터로서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으며, 여가생활은 물론이고 삶의 양식과 처세의 기법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수행한다. 여행을 가라, 아이를 돌보아라, 요리를 해라, 리액션을 해라, 인맥을 만들어라 등등.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될수록 시청자들은 불안정한 직업의 대표 격인 연예인들의 부침과 자기반영적 개그를 보면서, 자신의 불안을 투사하고 때로는 자기계발의 전범으로 삼는다.

<프로듀사>는 ‘예능프로그램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당위를 온몸으로 말하는 드라마이다. 이는 예능을 즐긴 적도 없는 서울법대 출신의 백승찬이 (전문직을 나타내는 ‘사’자 돌림의) ‘프로듀사’가 되어 직장에선 듣도 보도 못한 잡일을 하느라 박박 기면서, 집에선 혼자 예능 프로그램의 역사를 공부하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예능프로그램은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우리 시대의 정전이 되었다. 드라마가 매회 붙이는 소제목에서 강조하듯, ‘본의 아니게’ 말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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