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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11 19:59 수정 : 2015.10.23 14:28

황진미의 TV 톡톡

<가면>(에스비에스)은 다른 사람의 정체성으로 재벌가에 입성하는 여성을 그린 드라마다. <비밀>(2013년)의 최호철 작가와 <상속자들>(2013년)의 부성철 피디 작품답게, 휘몰아치는 전개와 뒤틀린 재벌가에 대한 묘사로 시청자들을 강하게 흡입한다. 여기에 수애, 주지훈, 연정훈의 호연이 돋보인다.

<가면>은 최근 영화 <은밀한 유혹>과 비슷한 서사를 지닌다. 빚에 몰린 여주인공에게 재벌가의 계략가가 접근해 자기가 원하는 인물이 되어 살아갈 것을 제안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여성은 그의 설계대로 괴팍한 재벌 남자와 결혼해 재벌가에 입성한다. 여자와 계략가 사이엔 균열이 생기고 남편과의 관계에선 뜻밖의 교감이 발생한다. 이를 통해 여자는 계략가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신데렐라가 된다.

비슷한 시기에 서사를 공유하는 작품이 나오는 건 나름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들 중 빚에 몰린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차이나타운> <무뢰한> <코인라커> <은밀한 유혹> 등등. 한때 빚은 주로 화류계 여성들을 옭죄는 착취도구였지만, 이제 빚은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 가계부채 1100조 시대, 학자금 융자와 취업준비 등으로 사회진출 이전에 빚이 먼저 깔리는 ‘빚의 일상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영화 <화차>에서 보듯 빚을 청산하기 위해선 자신을 말소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야한다. <가면>의 첫 회에서 절벽에 매달린 변지숙(수애)에게 “죽음이 꼭 나쁘지만은 않아. 특히 당신에게는”이란 민석훈(연정훈)의 말이 그 뜻이다. 빚을 벗으려면 가난뱅이 변지숙은 죽고, 재벌의 아내가 될 서은하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왜 꼭 재벌이어야 할까. <화차>에서 보듯 새로 얻은 신분이 또 채무자일 수도 있으니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재벌이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부는 재벌에게 집중돼있으며, 빚은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세습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부는 계급이 아닌 신분을 형성한다. 재벌은 귀족과 다르지 않으며, 무도회라는 기회조차 없으니 중세귀족보다 폐쇄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데렐라가 만들어지려면 호박마차 등의 재화가 아니라, ‘이미 귀족’인 어떤 여성의 신분이 필요하다.

변지숙이 가장하는 이미 귀족인 서은하의 삶이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은하는 대선후보의 서녀로 엄마는 떠나고, 일찍 유학 가서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이 없다. 내연남이었던 민석훈의 계략으로 최민우(주지훈)와 정략결혼을 하려다가 예비시댁에서 의문사 한다. 그러나 서은하의 죽음은 은폐되고, 변지숙이 그의 삶을 대리하지만 서은하의 주변에서 이를 알아채는 사람은 없다. 서은하는 결혼과 동시에 자신을 전혀 모르는 시댁에 둘러싸인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남편은 서은하를 폭력적으로 냉대하고, 남편과 불륜을 의심하는 시누이는 적대적이다. 시아버지는 경계의 눈초리로 서은하의 능력과 인맥을 시험한다. 유일하게 사랑했던 민석훈은 서은하의 시체를 유기하고, 변지숙을 내세워 서은하를 통해 이루려던 야망을 그대로 이어간다. 그나마 서민 출신 변지숙의 순수함이 최민우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지만, 서은하가 죽지 않았다면 그의 고독과 불행 중에 나아질 것은 없다.

첫 회에 그처럼 도도해보였던 상류층 여성, 서은하의 삶이 실상은 이런 거였다. 신데렐라가 되어 이루고픈 상류층 여성의 삶도 가부장제에 의해 억압되고 소외된 삶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빚으로 파탄 내는 자본주의와 상류층 여성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가부장제가 만든 지옥이 여기에 있다. 혼자 가면을 벗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면을 쓴 채 살아가라는 권력과 맞서 싸워야 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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