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09 18:47
수정 : 2015.10.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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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드라마 <딱 너 같은 딸>(문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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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일일드라마 <딱 너 같은 딸>(문화방송)은 명확한 의제 설정과 세밀한 갈등전개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드라마는 능력 있는 여성이라 해도 사회 안에서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라 할지라도 사적 관계 안에서는 가부장제적 차별로 고통 받는 현실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알파걸’과 ‘여왕벌’을 설명하는 마지성(우희진) 교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알파걸’은 남자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하는 소수의 여성들을 일컫는다. 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들어 성차별이 사라졌다고 선전하지만, ‘알파걸’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건 성 평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특별하게 길러낸 ‘여왕벌’ 엄마들 덕분이다. 이들은 기존의 순종적인 엄마들과 다르다.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딸의 역할모델이 되어 줄 뿐 아니라, 딸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며 자신이 꿈꾸었던 삶을 딸에게 주기 위해 온갖 뒷바라지를 하며 딸의 생활을 관리한다.
‘여왕벌 여사’ 홍애자(김혜옥)는 15년간 홈쇼핑 쇼호스트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가사노동은 물론이고 35년간 제사를 모시고, 세 딸들을 전문직 여성으로 길러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평가는 냉혹하다. ‘남편 기죽이는 년’이자, ‘딸년들 가르치느라 헛돈 쓰는 년’이다. ‘시월드’의 가부장적 억압에 질린 홍애자는 남편의 환갑잔치에 이혼서류를 내민다.
무능한 남편과 구시대적인 시어머니에 질린 홍애자는 큰 딸 마지성을 ‘최고의 조건을 갖춘’ 남자와 결혼시켰다. 재벌 후계자인 남편과 세련된 시어머니를 둔 마지성은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마지성 교수의 사회적 성취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하찮은 것이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완벽히 해내지 못하는 마지성은 ‘이기적이고 건방진’ 여자일 뿐이다. 시어머니는 가사노동을 빌미로 급기야 합가를 요구한다.
둘째 딸 마인성(이수경)도 당당한 엘리트 여성이지만 부하직원 소정근(강경준)과의 연애감정에 흔들린다. 소정근은 해병대 출신 아버지가 주입한 남성우월주의에 찌든 남자다. 처음 ‘마인성 박사’를 중년남성으로 오인한 그는 여성상사에게 노골적인 무시를 드러낸다. “여자는 고분고분해야 맛”이라 말하는 소정근에게 성 평등 의식이 투철한 마인성이 흔들리는 이유가 뭘까. 아이러니하게도 마초성 때문이다. 식스팩, 집 앞에서 비 맞고 기다리기, 여자들에게 거들먹거리며 인기누리기 등이 마초성이 아니고 무엇이랴. 사랑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일중독으로 살아온 마인성이 마초남성의 섹슈얼리티에 흔들리는 것은 중요한 진실을 담는다. 바로 성정치의 문제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과 섹슈얼리티의 문제라는 점이다.
셋째 딸 마희성(정혜성)은 미모의 여의사로, 병원 내 브이아이피 환자들에게 청혼을 받는다. 엄마를 가장 잘 이해하는 마희성은 ‘고르고 골라서 최고로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호언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이까지 있는 까칠한 이혼남 의사와의 로맨스를 암시한다. 부디 잘난 남자 원하는 그의 욕망이 발등을 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사적 관계 안에서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능과 미모를 자본의 가치로 환산하여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할 남자와의 만남을 욕망하지 않아야 한다. 즉 재벌남의 집안, 마초남성의 섹슈얼리티, 까칠하고 유능한 선배 등을 욕망해선 안 된다. 설령 자본주의적인 지불능력이 없더라도,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성과 성평등의 사상을 공유하며, 여성의 사회적 능력을 존중하고 지지할 뿐 아니라, 기꺼이 보살핌 노동을 할 수 있는 남성과의 결합을 지향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내 욕망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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