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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23 19:24 수정 : 2015.09.28 14:55

황진미의 TV 톡톡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명절특집 프로그램들이 방영된다. 예전에는 대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특집드라마들이 방영돼 화제를 낳았지만, 요즘엔 보기 어렵다. 매체 환경 변화로 본방 시청률은 낮아진데다 드라마 제작비는 높아졌다. 그 결과 상당한 기획력과 품이 드는 특집드라마를 만드는 대신 쉽게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영화를 여러 편 방영한다. 영화 방영은 광고주, 방송사, 시청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지만, 단막극의 실종은 드라마 제작의 실험성이나 콘텐츠의 다양성을 쇠퇴시킨다.

명절특집 프로그램의 중심은 예능으로 옮겨갔다. 한동안 명절예능 프로그램은 한복 입은 연예인들이 가족과 함께 나와 노래나 장기자랑을 하는 식이었다. 여기에 외국인 장기자랑을 곁들이면 제대로 된 구색이었다.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에 동화되어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이것이 다문화주의인 양 오인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명절예능은 그 정도로 촌스럽진 않다. 여전히 음악프로그램이 강세지만 형식이 다양해졌다. 외국인이 등장하더라도 <비정상회담>이나 <퀴즈 온 코리아>처럼, 동화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아육대’
2010년 이후 명절예능 프로그램의 최강자는 <아이돌 스타 육상, 씨름, 농구, 풋살, 양궁 선수권대회> 일명 ‘아육대’다. 1999년부터 <출발드림팀>이 연예인들의 운동실력을 겨루어 보였지만, ‘아육대’는 차원을 달리한다. 약 250명의 아이돌가수들이 팀을 이뤄 경기를 펼치는데, 매번 ‘체육돌’과 ‘부상돌’이 속출한다. 그런데 참 놀랍다. 250명이나 되는 아이돌이 존재한다는 것도 놀랍고, 아이돌가수들이 운동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보이는 것도 놀랍고, 전치 8주에 달하는 심한 부상을 입는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런데 모든 놀라움은 하나의 맥락으로 수렴된다. 250명이나 되는 아이돌가수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그들은 본업 이외에 스포츠를 연마해 ‘체육돌’이 돼야 하고, 부상까지 무릅쓰며 격렬한 경기를 펼쳐야 한다. 방송사는 음악프로그램 출연을 빌미로 아이돌스타들을 쉽게 섭외할 수 있고, 덤으로 팬들까지 응원단으로 확보할 수 있으며, 판만 깔아 주면 알아서 경쟁할 테니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원형경기장에서 죽도록 싸우는 노예검투사들처럼 극한의 서바이벌을 벌이는 이들의 경기는 본래 업무와 무관한 오만가지 스펙으로 살인적인 경쟁을 벌이는 취업 일반의 상황을 압축해 보여준다.

새로운 명절예능 프로그램들은 명절의 의미 변화에 주목한다. <나 혼자 산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명절특집으로 출발했다. 온 가족이 모여 명절을 보내는 게 아니라, 혼자 명절을 보내는 이들을 겨냥한 역발상이었다. 이처럼 전통적인 명절의 의미와 달리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올 추석 프로그램으로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능력자들>, <네 멋대로 해라> 등이 있다. <잉여여행백서>는 최소 경비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을 담은 관찰예능이고, <능력자들>은 각 분야의 ‘덕후’로 불리는 일반인 마니아들이 출연하는 쇼다. <네 멋대로 해라>는 스타일리스트 없이 혼자 옷을 입은 스타들을 전문가들이 품평하는 쇼다. 이 프로그램들은 ‘가족의 화합’이 아닌 ‘개인의 취향’을 지향하며, 명절을 휴가 삼아 여행, 취미, 패션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 명절예능과 크게 다르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분화되던 시절, 명절은 모처럼 대가족을 복원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핵가족에서 1인 가족으로 분화된 지금,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명절은 핵가족을 복원하거나 여전히 1인 가족으로 남는 시간이다. 현재 전체 가구의 26.5%가 1인 가구로, 명절을 개인적인 시간으로 보내는 이들이 점점 많아질 전망이다. 이들을 염두에 둔 명절 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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