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2.31 21:46
수정 : 2015.12.31 21:46
황진미의 TV 톡톡
12월26일에 방송되었던 2부작 특집드라마 <너를 노린다>(에스비에스·사진)는 뛰어난 만듦새와 놀라운 문제의식을 지닌다. 드라마는 독창적인 극본과 세련된 연출로 오늘날 대학 사회가 처한 끔찍한 민낯을 폭로한다. 학벌에 의해 사회적인 인정과 인맥이 결정되고, 대학들 사이에 공고한 서열이 존재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대학 내에서도 차별이 존재하며, 많은 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빚의 굴레에 빠져든다는 사실은 대단히 시의성 높은 고발이다.
<너를 노린다>는 명문대생의 살인에서 출발하여, 학벌주의와 학자금 대출의 문제를 정면으로 보여주면서, 캠퍼스를 깊게 물들인 자본의 질서가 재벌 3세와 정당 청년대표로 대변되는 거대권력에서 유래되었음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 퀴즈 영재였던 박희태(류덕환)는 국제중학교, 특목고의 루트를 타는 데 실패하고 지방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다시금 주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서울대 편입에 성공한다. 그는 편입학원의 후배들에게 성공한 멘토다. 드라마는 서울대 점퍼를 펴 보이며 “노력하여 승리하라”고 연설하는 박희태가 대학 안에서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명문대 캠퍼스 안에서도 출신 계급과 입학 경로에 따라 차별이 존재하며, 학생들은 이러한 경쟁과 배제의 논리를 내면화한다. 이 같은 캠퍼스의 풍경은 얼마 전 한 서울대생이 “삶을 결정짓는 것은 수저 색깔”이라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신림동 옥탑방에서 자살한 사건이나, 오찬호의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등을 직접 연상시킨다.
고시원에 사는 박희태는 ‘엔젤펀드’라는 창업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다닌다. 명문대생들만 접속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어, 재학생과 졸업생들 간에 학자금 대출을 알선하는 일종의 사금융이다. 박희태는 ‘엔젤펀드’를 만들기 위한 자금과 인맥을 얻기 위해 재벌 3세 염기호(권율)를 만난다. 서울대 법대생인 염기호는 명문대 상류층들만의 모임인 ‘알테스클럽’을 이끌며, 주가조작을 일삼는다. 학벌을 신용으로 활용하는 ‘엔젤펀드’의 아이디어가 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염기호는 박희태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정치인인 사촌형에게 밀려 사업지분을 양도하게 된 염기호는 ‘엔젤펀드’의 취약점을 활용하여 악마적인 사금융으로 변질시킨다.
신용이란 겉에서 보면 화폐의 움직임일 뿐이지만, 그 이면에는 돈을 매개로 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숨어 있다. 최고경영자가 된 박희태는 언론을 통해 ‘엔젤펀드’가 선배와 후배를 신용으로 이어주는 사회적 기업이자, 빚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착한 금융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채권자가 채무자를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관계이다. 채권자는 채무자가 올려놓은 정보를 보고 선택하여 빚을 준다. 동문이라는 믿음하에 느슨하게 생각했던 채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대학생들은 신용불량으로 취업에 불이익을 당할까봐 착취와 굴욕을 감수한다. 화폐가 베일을 벗고, 자본의 지배가 곧 사람의 지배임을 폭로하는 순간이다.
염기호는 말한다.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0.1%의 존재이고, 나머지 99%는 노예라고, 그리고 0.9%가 거기에 기생하는 존재라고. 0.1%의 상류층이 아닌 이상, 학벌사회 안팎을 가로지르는 복잡한 구별짓기는 모두 0.9%가 되려는 발버둥이다. 박희태는 자신의 꿈이 0.9%가 되려던 욕망이었음을 깨닫고 돌아선다. 박희태뿐만이 아니라 많은 청년들이 0.9%의 꿈을 벗고 99%로 돌아설 때, 99.9%는 0.1%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100%가 될 수 있다. 그럴 수 있을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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