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1.14 18:58
수정 : 2016.01.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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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름다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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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일일드라마 <아름다운 당신>(문화방송)은 세 가지 핵심적인 갈등을 지닌다. 첫째, 냉랭한 모녀관계, 둘째, 미혼모의 사랑, 셋째, 이혼이 완결되지 않은 남자와의 연애다. 모두 흥미롭고 진지하게 고찰해볼 문제들이다.
모든 모녀관계가 살갑지는 않으며, 다양하고 복잡한 애증을 지닌다. 1992년 드라마 <아들과 딸>(문화방송), 1999년 영화 <마요네즈>, 2006년 드라마 <눈꽃>(에스비에스) 등은 성차별, 환멸, 경쟁, 연민 등이 숨어있는 모녀관계를 그렸기에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당신>은 냉랭한 모녀관계를 출생의 비밀로 환원시킨다. 즉 남편의 외도로 얻은 딸이기에 다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는 친엄마라면 응당 애틋하다는 모성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며, 현실에 존재하는 허다한 모녀의 갈등을 보지 않게 만든다.
미혼모의 사랑이란 소재도 의미 있다. 2000년대 초 <비단향꽃무>(한국방송2)나 <내사랑 누굴까>(한국방송2)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자식이 있는 여성이 총각과 행복한 결혼에 이르는 진보적인 서사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당신>에 그런 가치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드라마는 미혼모를 소재로만 활용할 뿐, 실제 삶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차서경(이소연)은 젖먹이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단절을 딛고 방송작가로 재기한다. 도서관, 미술관, 카페, 바닷가, 남자 집 등을 돌아다니며, 복잡다단한 연애감정에 빠져있다. 서경의 엄마(정애리)도 수공예로 생계노동을 담당하니, 종일 누가 젖먹이를 돌보는지 불분명하다. 드라마는 필요에 따라 젖먹이를 등장시킬 뿐, 얼마나 많은 육아노동이 필요한지 사고하지 않는다. 또한 사랑에 배신당한 경험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심란한 노릇인지 살피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미혼모란 특별한 청승과 신비함을 지닌 채, 연애와 보호의 욕구를 자극하는 존재다. 그게 아니라면 두 남자가 동시에 서경을 사랑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
이혼이 완결되지 않은 남자와의 연애야말로 섬세히 다뤄야 할 문제이다. 이혼율이 높아진 지금, 결혼과 이혼의 점이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꽤 많다. 이들은 결혼의 유지를 위해서든 이혼의 완결을 위해서든 서로 소통하고 협의해야 한다. 하지만 하진형(강은탁)과 김수진(이시원)은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진형은 수진에게 무시로 일관하고, 수진은 진형에게 집착한다. 수진은 진형의 관심을 갈구하다가 무시당하자 악만 남은 상태로, 흡사 미친 사람처럼 군다. 드라마가 수진을 이토록 비정상적인 인물로 그리는 이유가 뭘까. 첫째는 수진의 패악질을 진형과 서경의 연애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삼기 위함이고, 둘째는 주인공에게 합리화와 면피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즉 상대를 미친 사람으로 그림으로써, 이혼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의 연애에서 고려해야 할 윤리적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결혼생활의 파탄에 일방의 책임만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한쪽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가 미친 사람 같지만, 상대를 만나보면 멀쩡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수진은 진형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미친 전처’의 전형에 가깝다. 어쩌면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결혼생활에서 일방적으로 도망치고픈 진형의 망상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자면 앞의 두 갈등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된다. 출생의 비밀은 엄마와의 갈등을 풀려는 노력 없이 가짜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믿어버리는 미성숙한 자아의 망상이고, 미혼모가 혼자만의 시간과 자아실현의 기회를 가지며 두 남자에게 동시에 사랑받는다는 것 역시 육아와 생계노동에 치어 꼼짝할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소망 충족의 판타지로 읽힌다. <아름다운 당신>을 현실드라마로 보면 맥 빠지지만, 책임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주체의 유아적이고 자기함몰적인 판타지를 그린 사이코드라마로 읽으면 꽤나 흥미진진하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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