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08 14:17
수정 : 2016.11.21 15:01
<원티드>(에스비에스)는 16부작 스릴러 드라마로, 현재 6회가 방송되었다. 신인 작가의 필력으로는 믿기지 않는 뛰어난 극본과 배우들의 고른 호연으로, 매회 예측할 수 없는 긴장을 쌓아간다.
톱 배우 정혜인(김아중)의 은퇴선언 직후, 아들이 유괴된다. 유괴범은 정혜인이 진행하는 생방송 리얼리티 쇼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회마다 미션이 주어지고,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비밀이 폭로되고 사건이 줄을 잇는다. 초반에는 현재의 남편이나 매니저가 의심스러운 가운데, 아동에 대한 폭력을 응징하려는 목적을 지닌 범죄인가 싶었다. 그러나 6회를 기점으로 정혜인의 전남편이 속한 재벌가와 연루된 복잡한 얼개임을 짐작하게 한다.
아이를 되찾으려는 모성을 동력으로 삼아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서사라는 측면에서 영화 <세븐 데이즈> <비밀은 없다>,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에스비에스) 등이 연상된다. 특히 <신의 선물-14일>과 <비밀은 없다>는 아이를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어머니와 대비되어 침착함을 유지하던 아버지의 실체가 마지막에 드러남으로써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균열을 냈다. <원티드>의 결말이 무엇일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보여준 드라마의 문제의식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원티드>는 범죄를 생중계하는 리얼리티 쇼라는 극한의 상상을 통해, 미디어의 속성을 깊이 들여다본다. 범인의 요구에 따라 ‘정혜인의 원티드’라는 전대미문의 쇼가 만들어지는데,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얽혀 있다. 방송사 사장, 책임피디, 피디, 조연출, 작가, 연예기자 등이 각자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각자의 이해관계와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이 함께 얽혀들면서, 방송의 선정성과 진정성이 동시에 구현된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성찰이다.
가령 영화 <그놈 목소리>에서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가 돌연 자신의 아이를 유괴한 범인을 찾아달라고 시청자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여기서 감독은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의 진짜 유괴범 목소리를 관객에게 들려준다. 감독은 실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매체가 선정적일 수 있음을 사유하지 않는다. 오직 유괴범을 응징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진정성만을 밀어붙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뉴스가 방송되었다면, 진정성보다 선정성이 더 크게 부각되었을 것이다.
한편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테러 협박을 가하는 범인의 지시에 따라 진행되는 뉴스를 보여준다. 영화는 방송을 둘러싼 사람들의 추악한 욕망을 냉소적으로 비추며, 마지막에 화끈한 응징을 보여준다. 생방송 도중 폭탄이 터져 사람이 죽지만, 관객은 속물적인 그들을 관조할 뿐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 범인이 요구한 진정성 있는 사과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방송에는 선정성만 있지, 진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탄이 담겨 있다.
요컨대 <그놈 목소리>는 방송의 진정성만을 보고, <더 테러 라이브>는 방송의 선정성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원티드>는 선정성과 진정성이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며, 진정성이란 오히려 선정성을 통해 발현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정혜인의 원티드’에는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명분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청률 20%를 넘겨야 한다. 이를 위해 선정적인 화면과 자극적인 설정이 그대로 노출된다. 물론 이렇게 하는 데는 각자의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행위를 아이를 살린다는 대의를 위한 것인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매 순간 진정성과 선정성이 경합하고 충돌하지만, 이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을까.
가령 정혜인은 인기 토크쇼에 깜짝 출연해 울며 쓰러진다. 현장에서 의식적으로 다른 아이를 보듬는가 하면,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아이 엄마의 옷을 찢는다. 이를 연기다, 가식이다, 선정적 행위다 하고 비난하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여기에 아들을 살리고, 이들 모자를 가정폭력에서 구해야 한다는 진정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어느 것이 외피이고, 어느 것이 내면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흔히 사람들은 가면을 벗으면 진정한 얼굴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면은 곧 얼굴이며, 가면을 벗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면을 벗으려 하지 말고, 이것이 가면이자 곧 얼굴임을 가리키며 살아야 한다. ‘정혜인의 원티드’를 둘러싼 영악하면서도 진실한 사람들처럼. 이것은 어른들의 세계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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