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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7 14:27 수정 : 2016.11.21 14:54

요즘 티브이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넘쳐난다.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와 <미운 우리 새끼>(에스비에스)만 있는 게 아니다. <티브이엔>의 <내 귀에 캔디>는 혼자 사는 사람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을 담은 관찰 예능이다. <혼술남녀>는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는 사람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독거인들의 식사를 중심으로 다루었던 <식샤를 합시다>와 같은 맥락이다. <올리브티브이>의 <8시에 만나>와 <조용한 식사>(9월30일 종영)는 혼자 밥 먹는 장면을 비추는 ‘먹방’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문화방송)이나 <개밥 주는 남자>(채널에이)도 독거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이다.

1990년대 영국의 티브이 시리즈 <미스터 빈>을 볼 때만 해도, 그의 우스꽝스러운 표정 못지않게, 혼자 살고 혼자 밥 먹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러나 이제 독거는 한국인에게도 보편적이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는 1인 가구로, 전체의 27.2%나 된다. 1995년만 해도 ‘이상적인 핵가족’의 상징이던 4인 가구가 31.7%로 가장 많고, 1인 가구는 12.7%에 불과했다. 하지만 20년 사이에 역전되어, 4인 가구는 18.8%에 불과하다. 1990년대 신해철은 “온 가족이 모여 앉은 저녁 시간에도 아무 말도 필요 없다 티브이 타임!”을 개탄하듯 노래했지만, 이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 일도, 티브이를 함께 보는 일도 없어졌다. 혼자 살거나, 같이 살더라도 각자 밥 먹고 각자 티브이 보고 각자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먹방’이 유행했던 것은 혼자 살거나 혼자 밥 먹는 인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밥 먹는 모습을 봄으로써, 마치 함께 먹고 있다는 착시가 일어난다. <집밥 백선생>(티브이엔)이나 <냉장고를 부탁해>(제이티비시)처럼 혼자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을 알려주는 ‘쿡방’이 뜬 것도 이 때문이다. <8시에 만나>나 <조용한 식사>는 ‘먹방’의 숨은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혼밥’에 주목한다. 출연자들은 혼자 먹지만, 웹캠을 통해 소통하면서 함께 먹는다는 느낌을 공유한다.

<나 혼자 산다>와 <미운 우리 새끼> 속 독거인들은 별로 아쉬워 보이지 않는다. <미운 우리 새끼>의 어머니들처럼 여전히 독신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하지만, 현실적인 압박이 되지는 못한다. 독신에 대한 세대 간의 시각차를 도드라져 보이게 할 뿐이다. 혼자 사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다만 외로운 게 문제다. 이러한 결핍에 주목한 것이 <내 귀에 캔디>와 <개밥 주는 남자>다.

<내 귀에 캔디>에서 장근석을 비롯한 출연자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통화하며, 속 깊은 대화를 풀어놓는다. 이들이 소소한 일상을 전화로 속살거리는 모습은 누구나 경험했을 연애 초기의 설렘을 일깨운다. 혼자 사는 사람의 가장 큰 결핍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내 귀에 캔디>는 이러한 독거인들의 결핍을 파고들면서 마치 내가 출연자들과 통화하는 누군가이거나, 나 역시 지금 ‘썸’을 타고 있는 누군가와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개밥 주는 남자>는 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다. 주병진은 초호화 펜트하우스에 혼자 산다. 무료하고 적막하던 그의 일상이 강아지 삼형제가 온 뒤부터 달라진다. 강아지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무료할 짬이 없고, 혼자서도 부쩍 말수가 늘었다. 그는 강아지들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한다. 흡사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처럼, 겨울만 계속되던 그의 저택에 봄이 온 듯하다. <개밥 주는 남자>에는 주병진 외에도 개와 가족을 이루어 ‘개 엄마, 개 아빠’로 성장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은 단지 동물을 애완용으로 기르는 게 아니라, 동물과 동반자적인 관계를 맺는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21.8%에 이르고,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천만명을 헤아린다. 요컨대 과거 가족이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해왔듯이, 이제 핵가족에서 1인가족이나 반려동물가족으로 변천 중이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낮아지고, 이혼율과 평균수명이 높아짐에 따라 이제 성인이 된 뒤 독거는 기본값이 되었다. 일시적으로 가족을 이루어 살더라도 자녀의 독립, 이혼, 사별 등에 의해 중년이나 노년에는 다시 독거인이 되는 것으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가사노동 등이 외주화됨에 따라, 유일하게 남은 가족의 기능인 정서적인 소통도 이제 디지털 매체를 통해 멀리 있는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함께 사는 반려동물과 정서적인 교감과 스킨십을 나누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다 아이를 낳지 않아 인류가 멸종하면 어찌하냐고? 그게 두렵다면 최소한 육아를 사회화해야 한다. 사회적 재생산을 계속 가족에게 맡겨두는 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출산파업’은 가속화될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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