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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04 14:30 수정 : 2016.11.21 13:46

[토요판] 황진미의 TV 톡톡

KBS2 ‘우리집에 사는 남자’

<우리집에 사는 남자>(한국방송2)는 동명의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이다. ‘연하의 새아버지’라는 튀는 설정과 수애의 코믹 연기가 초반의 화제를 이끌었지만, 심각한 갈등에 비해 어수선한 상황 전개로 재미가 급감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할 거리는 있다. ‘연하의 새아버지’라는 도발적인 설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연인이 남매로 밝혀지고, 딸이 며느리가 되거나, 시어머니였던 사람이 며느리가 되는 식의 ‘족보 꼬인’ 상황은 막장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이런 설정들은 신파의 재료이거나, 가끔은 가족제도의 허위를 풍자하는 소재가 된다. 하지만 ‘연하의 새아버지’는 그보다 훨씬 발칙한 느낌을 자아낸다. 딸이 엄마의 남자를 욕망한다는 패륜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딸보다 어린 남자를 소유한 중년여자의 음험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도발적인 설정을 던져놓고 은근슬쩍 빠진다. 돌아가신 엄마와 결혼한 사이였다며 새아버지를 자처하던 남자에게 다른 비밀이 있었다는 식이다. 드라마는 그의 정체를 둘러싼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티격태격과 알콩달콩을 뒤섞다가, 마침내 그의 정체와 진심을 확인하고 사랑하게 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즉 새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확인 과정을 거쳐, 엄마의 남자를 욕망한다는 심리적 금기를 원인무효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커피 프린스 1호점>(2007년 문화방송)에서 남장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성이 동성애적인 감정인 줄 알고 고민하다가 여자임을 알게 되어 해피엔딩이 되는 식이다. 그런 경우 동성애의 금기에 대한 주인공의 고민이 드라마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가면 쓴 동성애 드라마로 볼 수 있다. 사회적인 금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동성애적 욕망에 대해 발언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우리집에 사는 남자>도 엄마의 남자를 사랑한다는 욕망을 풀어놓으면서, 시치미를 떼는 드라마로 볼 수 있을까?

그보다는 다른 욕망이 읽힌다. 최근의 드라마 <공항 가는 길>(한국방송2)과 <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공통점이 많다. 첫째는 여주인공의 직업이 스튜어디스이고, 남자를 직장 동료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는다. 둘째는 새 남자들은 고택이나 가게 등에 머물며 누군가의 새아버지임을 자임한다. 이들은 어머니들이 물려준 일을 하는데, 어머니들은 두 사람을 맺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설정은 여성들의 자아상과 욕망을 반영한다.

즉 여주인공으로 대변되는 현대 여성들은 날아다니는 존재다. 이들은 제복이 상징하듯 확실한 소속감과 전문성을 지닌 직업인으로, 지상에서의 일상을 돌보기 힘들 만큼 바쁘게 세계를 누빈다. 직장 내 경쟁도 치열해서 그 경쟁이 남자를 빼앗는 것으로 드러난다. 일에 지치고 경쟁으로 상처받은 여성이 사랑에 빠지는 새 남자는 집을 돌보는 자이다. 그저 집안일을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집과 자신의 정체성이 결부된 존재이다. 이들은 어머니들의 일을 계승하여 가치를 높인다. 그리고 남의 자식을 품고 새아버지임을 자임하는 부성적 존재이다. 즉 가업을 잇고 집안을 돌보며 가족들을 보살피는 역할이 남성들에게 주어져 있다. ‘하늘의 여자’와 ‘땅의 남자’를 맺어주는 것은 어머니들의 죽음이다.

요컨대 <공항 가는 길>과 <우리집에 사는 남자>가 보여주는 현대 여성의 자아상과 욕망은 이런 것이다. 흔히 여자들을 ‘돈도 벌지만 주로 가정을 돌보는 존재’로 보지만, 나를 그렇게 보지 마라. 내 일도 엄청 바쁘고, 경쟁도 치열해서 나 자신을 돌보기도 힘들다. 이렇게 지친 나를 돌보아줄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언제나 정겨운 집에 머물며 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 쉴 곳이 되어 준다. 혹시 그가 나쁜 놈이거나 일시적인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접어두라. 그와 나는 어머니들이 운명적으로 맺어준 관계니까.

이런 욕망이 빚어낸 텍스트로 읽는다면 <우리집에 사는 남자>가 더 노골적이다. ‘부성적인 존재’에서 나아가 아예 ‘내 아버지’임을 자처하는 남자다. 그가 계승하고 우리를 맺어준 존재는 ‘남자의 어머니이지만 상징성을 지닌 어머니’인 게 아니라 그냥 ‘내 어머니’이다. 이렇게 보면 엄마의 남자를 욕망한다는 발칙함은 사라진다. 그보다는 모녀 가정의 사위가 되어 아내와 장모에게 두루 사랑받으며 다채로운 감정노동을 펼치는 남자가 떠오른다.

흔히 남자들이 완벽한 여자를 꿈꿀 때, ‘젊고 아름다우며, 엄마처럼 나를 챙겨주고, 우리 엄마에게는 딸처럼 구는 여자’를 꼽는다. <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이 욕망의 완벽한 거울상이다. 연하에 몸 좋은 미남이면서, 아빠처럼 든든하고 자상하게 나를 챙겨주고, 우리 엄마에게는 아들처럼 살갑게 굴면서 때로는 엄마에게도 이성적인 두근거림을 선사해주는 남자! 이보다 노골적인 여성 판타지가 또 있을까. 하지만 이것 하나는 곱씹어볼 만하다. 요즘 여성들이 원하는 남자가 잘난 왕자님도 아니고, 은근한 도움을 주는 실장님도 아니고, 아예 딸바보 아빠처럼 내 일상을 챙겨주는 남자라는 것. 여성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이러한 욕망이 두드러질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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