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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30 17:11 수정 : 2016.12.30 20:13

[토요판] 황진미의 TV 톡톡

<마음의 소리>(한국방송2)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시트콤이다. 포털사이트에 연재 중인 조석 작가의 웹툰 <마음의 소리>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시트콤으로 제작되어, 11월부터 웹 드라마 형태로 인터넷에 공개되었고, 12월부터 티브이에서 방영 중이다.

그동안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진 예는 많았다. <미생> <냄새를 보는 소녀> <치즈인더트랩> 등. 그러나 서사로 이어지는 웹툰과 달리, 매회 에피소드로 나뉘는 코믹일상 웹툰을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전례가 없다. 웹툰 특유의 황당한 상황이나 유머코드가 드라마라는 안정된 형식에 담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기우였다. 제작진은 1천개가 넘는 에피소드 중 드라마에 적합한 에피소드를 가려내고, 이광수, 정소민, 김대명, 김병옥, 김미경 등 웹툰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원작의 풍미를 살렸다.

웹 드라마가 공개된 뒤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티브이 방영 뒤에도 상당한 화제를 낳고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이후 한동안 시트콤이 제작되지 않았던 방송가에 <마음의 소리>가 시트콤의 새바람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마음의 소리>는 기존의 시트콤에 비해 현실감의 기준을 크게 낮추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가고 있다. 또한 그동안 시도되었던 그 어떤 장르보다 웹툰을 기반으로 한 짤막한 시트콤이 웹 드라마의 매체적 특성에 잘 맞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마음의 소리>가 지상파 시트콤으로 안착되는 현상은 ‘병맛 코드’의 대중적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병맛’은 개연성이 없고 황당하여 맥이 빠지는 유머를 뜻한다. 허무개그와 비슷하지만 B급 정서와 기묘한 중독성이 핵심이다. 웹툰이나 게임 등 하위문화를 다룰 때 주로 쓰는 용어로, 낙오자적인 정서나 발작적인 변태성을 자조적으로 일컫는다. 원작자인 조석은 ‘병맛’의 원조 격인 작가로, 이말년, 귀귀 등에 비해 다소 온건하고 대중적인 ‘병맛’ 작가로 분류된다. 시트콤 <마음의 소리>는 웹툰 등 하위문화에서 통용되던 ‘병맛 코드’가 지상파 티브이라는 보편담론의 세계로 상륙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하필이면 <마음의 소리>를 매개로 웹툰의 ‘병맛 코드’와 지상파 티브이의 보편성이 만난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마음의 소리>는 지난 십년간 쉬지 않고 연재되어온 한국 최장수 웹툰이다. 십년이면 웹툰을 보며 자란 청소년이 성인이 되었을 시간이다. 이들에게 ‘병맛’은 더 이상 하위문화의 코드로만 인식되지 않으며, 보편적인 유머코드로 폭넓게 수용된다. 이는 <무한도전>이 10년간 방영되면서 위상이 달라진 것과 비견될 만하다. 초창기의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자처하는 이들의 무모함과 허접함을 주요 정서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는 독자적인 마니아층을 거느린 채 트렌드를 선도하는 주류 예능프로그램으로, 수많은 선망과 아류를 양산하고 있다. 하위문화의 소수자적 정서가 주류문화로 흡수된 예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도 꼽을 수 있다. <마리텔>은 인터넷 티브이의 1인 방송을 지상파 티브이에 결합시킴으로써, ‘덕후 문화’와 쌍방향 소통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주류매체로 끌어들였다.

<마음의 소리> <무한도전> <마리텔>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병맛’이나 ‘잉여력’ 등이다. 이는 단순히 기호나 취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뚜렷한 세대론적 특징을 지니며, 사회경제적 토대를 반영한다. 예컨대 <마음의 소리>와 <무한도전>을 보며 자랐고, <마리텔>이 드러내는 인터넷 방송에 친숙한 세대들의 물적 토대가 지난 10년간 변하지 않았음에 주목해야 한다. 즉 잉여의 청소년이 자라서, 잉여의 성인이 되었다. 마니아는 ‘덕후’가 되었고, 사회 진출 이전의 기간은 무한히 길어졌다.

사방이 멈춰진 듯한 시간 속에서 무한대의 시간이 주어지고, 젊은이들은 격리된 공간에서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각자의 ‘잉여력’을 뽐내면서 어른-아이가 되어간다. <마음의 소리>는 이러한 상황들을 희비극적인 에피소드에 담는다. 태블릿 피시를 사달라며 가출한 줄 알았지만 안방 장롱 안에서 기거하는 20대 웹툰 작가 지망생, 중국에 출장 갔지만 심심함을 견딜 수 없어 화상통화로 가족의 일상에 들러붙는 30대 직장인, 집 안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방에 설치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50대 가장, 연애를 인터넷으로만 배워서 상대를 앞에 두고 엉뚱한 짓거리만 하는 청춘남녀 등이 모두 그러하다.

웹의 장막 너머에 있던 청년들이 ‘안남시민연대’, ‘민주묘총’, ‘장수풍뎅이연구회’, ‘으어’ 등 ‘병맛’과 ‘잉여력’ 쩌는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왔다. 이들에게 현실 사회의 체험을 돌려주어야 한다. 우선 만 18살 선거권 부여만이라도 시작하자. 그러면 그다음이 달라질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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