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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13 15:12 수정 : 2017.01.13 23:01

3부작 다큐멘터리 <에스비에스 스페셜: 아빠의 전쟁>(에스비에스)은 지난해 방영되어 반향을 일으켰던 <엄마의 전쟁>에 이은 후속작이다. 1부 ‘아빠, 오늘 일찍 와?’에서는 과도한 업무와 늦은 퇴근으로 하루 6분밖에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들의 일상을 돌아보고, 2부 ‘아빠와 저녁을: 더 디너 테이블’에서는 한 달 동안 아빠와 함께 식사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3부 ‘잃어버린 아빠의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스웨덴 아빠들의 삶을 보여줄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생계부양자로 고군분투하면서 아이들에게 환대받지 못하는 아빠들의 모습을 비추며,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희구를 드러낸다. 대략 맞는 말이고, 필요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찬찬히 보노라면, 단일한 주제의식으로 묶이지 않는 불균질한 질문들이 삐져나온다.

1부에서 처음 소개된 사례는 찬양 아빠이다. 19살 딸은 아빠 앞에서 침묵하거나 눈물을 흘린다. 아빠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바쁘게 일하느라 어릴 때 놀아주지 못한 탓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과연 그럴까. 이 가족은 2부에도 중요하게 등장한다. 아빠와 저녁 먹기 미션에 도전하지만, 도중에 며칠간 중단되는 등 가장 나쁜 성취도를 보인다. 딸은 중학생 때 아빠에게 들었던 말을 들려준다. 딸의 상처는 아빠의 바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성공주의 철학과 배려 없는 태도에 비롯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아빠들의 바쁨이 원인이라는 단순한 문제의식을 밀고 나간다.

제작진은 위 사례에 이어 중소기업의 ‘칼퇴(정시퇴근) 프로젝트’를 보여준다. 왜 ‘칼퇴’가 이루어지지 않는지를 보여주며 조직문화에 대해 말하는 듯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칼퇴’가 곧 민폐가 되는 산더미 같은 일의 양이다. 즉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직문화를 바꾸기보다 인력 보강 등 일자리 나누기가 필요하다. 다만 ‘칼퇴 프로젝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일찍 퇴근한 아빠들이 곧장 귀가하여 육아에 시간을 쓴다는 점이다. 즉 노동시간 단축이 아빠 육아를 가능케 하는 첫 단추임을 말해준다. 일과 양육이 절대적인 시간함수로 맞물려 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공항에서 맞교대하는 부부이다. 야근을 한 뒤 아이를 안고 집에 온 아빠는 쏟아지는 잠과 놀아달라는 아이 사이에서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이 사례에서도 같은 직장에서 똑같이 일하고 돌아온 엄마는 이유식을 만들고 꼼꼼하게 스케줄을 관리한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절대적 시간함수에 구멍이 있음을 더 잘 보여주는 사례는 2부에서 소개된 세 남매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다. 아내는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세 아이를 낳고 퇴직하여 네일숍을 운영한다. 남편은 야근 외에도 다양한 친목활동을 하느라 외출이 잦다. 육아는 조금 거들고 집안일은 아내에게 전담시키는데, 이는 육아와 가사를 아내의 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절대적인 노동시간 못지않게 가부장적 인식이 아빠 육아의 변수로 작용함을 말해준다. 아내의 부재로 ‘독박육아’를 경험한 남편은 가사와 육아를 공동 업무로 인식하고 행동이 달라진다.

1부 마지막에 소개된 방송인 조영구와 2부에서 소개된 재활용센터를 운영하는 슬기 아빠의 사례는 육아가 노동시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욕망의 문제임을 확인시킨다. 조영구가 저녁 함께 먹기 프로젝트에 대한 말을 꺼내자 아내는 “안 돼”라며 소리친다. 아내와 열 살 아들은 이미 사교육으로 스케줄이 빡빡하다. 조영구는 어릴 때 놀아주지 못한 탓에, 아빠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빠는 돈을 버는 것으로, 아이와 엄마는 사교육 투어를 하며 각자의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간다. 일중독자 슬기 아빠의 방송 출연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에 슬기는 <안녕하세요?>(한국방송2)에 출연하여 아빠에 대한 고민으로 공감을 얻어 상금을 탔다. 그러나 방송 출연 후 아빠의 일중독은 개선되지 않았고, 방송 출연은 2012년 <생활의 달인>(에스비에스) 출연분과 더불어 업체 홍보에 활용된다. 아빠의 일중독을 방송에 호소할수록, 아빠의 사업은 번창하고 일중독은 심해지는 셈이다. 조영구와 슬기 아빠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하느라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빠’에 대한 접근은 달라져야 한다. 노동착취라는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욕망의 문제로 접근해야 실마리가 보인다. 앞의 찬양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바쁨은 한 가지 조건이었을 뿐, 딸과 멀어지게 한 진짜 이유는 그에게 내면화된 경쟁 위주의 욕망과 가부장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2부의 문을 열면서, 프로그램은 아빠들에게만 무료로 야식을 제공하는 밥차를 비춘다. 여전히 외환위기 시절의 응원가 “아빠 힘내세요”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그러나 단지 아빠들만 힘을 내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일자리 나누기는 물론이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적 욕망이라는 ‘좋은 아빠 되기’의 진짜 적을 드러내고 싸워야 할 때가 아닐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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