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텔레비전 예능의 블루칩은 이효리다. 지난 2주간 <무한도전>(문화방송), <효리네 민박>(제이티비시), <뉴스룸>(제이티비시), <라디오스타>(문화방송), <해피투게더3>(한국방송2)에 이효리가 출연하여 입담과 매력을 발산했다. 이효리 6집 음반 출시에 맞춰, 4년 만에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그 중 백미는 <효리네 민박>이다. 오랫동안 준비한 대형 프로젝트로, 민박 신청자가 2만명에 이를 만큼 인기가 높다. <효리네 민박>은 볼거리가 많다. 제주도라는 천혜의 관광지를 배경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이효리·이상순 커플의 일상이 공개된다. 개와 고양이들도 시선을 빼앗고, 민박객들의 면면과 이효리·이상순 커플이 이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는지도 흥미롭다. 여기에 도우미로 아이유까지 합세한다. 나영석 피디의 <신혼일기>(티브이엔)가 강원도 산골에서 구혜선·안재현 부부의 일상과 반려동물만으로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것에 비한다면, <효리네 민박>은 물량공세에 가까운 재미요소를 지닌다.
물론 재미의 핵심은 이효리·이상순의 결혼생활이다. 4년 전 섹시 가수이자 소탈한 예능인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리며 소셜테이너로서 상당한 발언력도 행사하던 이효리가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상순에 대한 관심이 폭주했다. 실력 있는 뮤지션이라지만, 대중들에겐 무명이나 다름없는 이상순이 대체 누구인지 물었으며, 파격적인 스몰웨딩으로 시작된 제주에서의 신혼생활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했다. 결혼 직후 이효리가 진행했던 <매직아이>(에스비에스)에서 결혼생활이 잠깐 언급됐지만, 이후엔 공개되지 않았다. <효리네 민박>은 두 사람의 일상을 관찰 예능의 형태로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화제성이 높다. 드디어 뚜껑이 열리자, 칭찬과 부러움이 봇물처럼 터졌다.
두 사람은 마당 넓은 집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요가를 하고, 음악을 듣고, 개를 키운다. 연신 “오빠, 오빠” 하며 이상순에게 자잘한 일을 시키는 이효리에게 이상순은 자상하게 응했다. 한눈에도 두 사람의 성격이 잘 맞고, 이효리가 이상순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아내를 위해 차를 내리고, 식사를 준비하고, 아내 말에 귀 기울이는 이상순의 다정함을 예찬하는 사람들, 이들의 한갓진 생활을 부러워하는 사람들, 저들의 행복은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보다 정확한 논평은 이효리를 통해 나왔다. 이효리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이상순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이라며 선을 그었다. 생계노동에 매진하지 않는 이상순이 좋은 남편일 수 있는 것은 “아내인 내가 돈이 많기 때문”이라는 말로 좌중을 압도했다. 여유로운 생활과 다정한 일상이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여건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짚었다.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자신의 스몰웨딩이 실은 가장 호사스러운 예식이었으며,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예식은 평범한 예식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현실과 판타지에 대한 명징한 논평이자, 자기객관화의 모범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안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삶을 살지는 않으며, 여기에는 가치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음을.
최근 이효리가 출연한 예능은 이효리의 가치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함이다. 핑클 시절이나 섹시 가수 시절이나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일 때나, 그는 늘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표절 의혹이 터졌을 때도 그의 대처는 솔직한 인정이었다. 이후 그는 존재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채식과 동물애호라는 실천을 수행하며,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회적 발언을 하며 살았다. 그는 정상에서 은퇴하는 것과 더 이상 최고가 아님을 자인하며 서서히 내려오는 것 중 무엇이 나을지 고민했다고 말한다. 요가를 하며 집착을 내려놓으려는 마음과, 넘치는 흥과 끼를 발산하며 주목받고싶어 하는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 자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솔직함이 있기에 이효리는 단순한 유명인이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롤 모델로 자리매김된다.
지금 젊은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이효리일 것이다. 그는 20년차 가수로 경력을 이어가며, 음반제작에 점점 더 자신의 창의성을 입히고 있다. 자신의 성공을 바탕으로, 경제력은 제쳐두고 마음에 맞는 남자와 결혼한 뒤 남편의 보살핌을 받는다. 음반과 실제 삶을 통해 페미니즘과 생태주의에 관심을 드러내며, 소박하지만 멋지게 산다. 요즘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청담동 며느리’나 ‘트로피 신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 경력과 성취를 인정받으며, 나의 목소리로 솔직한 말을 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이효리만큼의 재능과 재력을 갖진 못했지만,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며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픈 여성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에게 이효리는 스타가 아니라 별자리이다. 캄캄한 사막에서 길을 알려주는.
대중문화평론가[관련 영상] <한겨레TV> | 잉여싸롱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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