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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01 16:37 수정 : 2017.09.01 19:54

[황진미의 티브이 톡톡]

<조작>(에스비에스)은 언론 문제를 다룬 사회극이다. <비밀의 숲>(티브이엔) 이후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에 장르적 긴장감이 부족한데,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드라마가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한다. 전체 판도를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 실마리를 따라 추리해나가는 과정을 따라 극을 전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 틀을 알고 있는 작가가 한 사건에서 다음 사건으로 인물들을 몰아가며 극을 전개한다. 시청자들은 추리할 틈이 없으며, 추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장황한 설명이 들어선다. 악역인 구상무(문성근)는 자기 행위를 주절주절 설명하는데, 이러한 해설은 그의 카리스마를 반감시킨다. 다른 인물들도 신선감이 떨어진다. 1등 신문사 기자로 진실을 좇는 이석민(유준상)은 정형화된 인물이다. ‘기레기’를 자처하는 박무영(남궁민)은 개성 있는 인물이지만, 전작 <김과장>(한국방송2, 3월 종영)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여기에 사이보그를 방불케 하는 악의 하수인에 대한 묘사나 음모론적인 밑그림은 극의 리얼리티를 깎아 먹는다.

하지만 이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조작>은 미덕이 있는 드라마이다.

첫째, 언론에 대한 문제제기가 돋보인다. 드라마는 박태환 선수 도핑, 성완종 비자금 리스트,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 조희팔 도피 의혹, 유병언 사체 의혹 등 실제 사건을 환기하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현재 언론이 처한 두 가지 문제를 보여준다. 하나는 주류언론의 의도적인 여론 조작이다. 드라마는 파업 노동자의 화염병에 맞아 여고생이 다쳤다는 오보로 파업을 실패로 몰아간 사례를 언급하였다. 실제로 비슷한 오보가 있었다. 2009년 <중앙일보>에는 철도 파업으로 서울대 면접시험장에 가지 못해 떨어진 고교생의 사연이 실렸다. 오보였다. 면접 당일 철도 운행은 정상이었다. 그러나 여론 악화로 파업은 실패했고, 노조원 200여명이 해고되었다. 보수언론이 광고주인 재벌의 입장을 대변하여 친자본적 여론 조작에 나선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화 <내부자들>에는 재벌-정치권-검찰 등 기득권 세력을 엮는 핵심 고리로 보수신문사 주필이 등장한다. <조작>의 구상무 역시 ‘어르신들’이 원하는 대로, 담론의 판을 짜고 여론의 방향타를 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와 전혀 다른 방식의 여론 조작도 존재한다. 군소 매체들이 검증 안 된 기사들을 인터넷에 쏟아내어 사건의 본질을 흐리거나 혼란을 가중한다. 박무영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온 살인자의 얼굴과 동선을 공개하여 사회적 응징이 일어나게 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탈옥수의 인질극을 생중계한다. 게릴라적인 그의 행동은 검찰이나 기존 언론이 수행하지 못한 정의와 진실에 다가서는 것처럼 보였지만, 곧바로 역이용된다. 희대의 사기꾼이 흘린 거짓 정보에 분노한 시민들이 몰려들고, 모두의 눈이 다른 곳에 쏠린 틈을 타 범인이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오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거짓 기사를 인터넷에 띄우면 무수한 매체들이 받아쓰고, 원래 기사가 삭제된 후에도 복제된 기사들이 뉴스난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 사회관계망이 가세해 퍼나르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언론 환경의 다각화로 주류언론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군소 매체들을 통한 여론 조작의 폐해가 새롭게 대두되는데, 드라마는 이러한 문제를 잘 포착하여 보여준다.

둘째,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 신선하다. 남성 중심 조직인 검찰에서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윤소라(엄지원) 검사와 차연수(박지영) 부장검사는 모두 여성이다. 또한 긍정의 에너지를 뿜는 사진기자 오유경(전혜빈)도 기혼여성이다. 서툴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인턴기자나 로펌의 내부고발자도 여성이다. 반면 적폐의 본령인 구상무와 조 변호사(류승수), 기회주의자인 임지태 부장검사, 나성식 기자 등은 모두 남성이다. 사회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자신의 성장을 이루는 인물들에 여성을 배치한 것은 작가의 ‘젠더의식’이 반영된 의도적인 설정으로 읽힌다.

셋째,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구상무는 병든 아내를 극진히 사랑한다. 아내는 대학 시절 구상무가 시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책을 읽던 모습이 멋졌다고 회상한다. 그는 로맨티스트이고 자유주의자일 테지만, 공적 차원에서 악인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박무영은 죽은 형이 진실을 좇다가 희생되었다고 믿었지만, 진실을 파헤칠수록 형이 조작세력의 부역자였음이 드러난다. 박무영은 혼란스러워하지만, 사적 복수심과 다른 차원의 정의감을 차츰 얻어간다. 사적 친밀감과 공적 정의를 구분할 수 있을 때, 공의로운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

박무영의 형은 조작에 가담하면서도 조작을 드러내는 단서를 곳곳에 남겨두었다. 조직에 속해 어쩔 수 없이 악을 행하면서도 소극적 저항을 한 것이다. 고 백남기 농민의 의무기록을 상세히 적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레지던트를 비롯하여, 지난 정권에서 혹은 더 이전 정권에서 불의한 명령에 따르면서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자 소극적 저항을 했던 인물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남긴 단서들의 의미를 찾아내고, 나아가 그들이 양심선언에 나설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적폐청산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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