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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4 18:36 수정 : 2017.11.25 04:14

[황진미의 TV 톡톡]
MBC 드라마 '돈꽃'

<돈꽃>(문화방송)은 재벌가를 배경으로 한 24부작 드라마다. 제목이 말해주듯 ‘돈’이 상징하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꽃’이 상징하는 순수한 사랑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강필주(장혁)는 자신이 모시는 재벌 3세 장부천(장승조)이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차기 대선주자의 딸 나모현(박세영)과의 결혼을 기획한다. 사실 강필주는 재벌가의 혼외자로, 장부천의 어머니 정말란(이미숙)에게 원한이 있다. 장부천을 내세워 그룹을 집어삼킨 뒤, 정체를 드러내 정말란에게 복수하려는 것이다. 한편 강필주는 어린 시절 나모현에게 목숨을 빚졌다. 나모현은 강필주를 못 알아보지만, 둘은 애틋함을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틀에 박힌 이야기다. 출생의 비밀과 복수, 정략결혼과 정경유착이 펼쳐지는 가운데 세 남녀의 애정이 얽혀든다. 뻔한 서사지만, <돈꽃>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참신함이 있다.

첫째, 강필주와 장부천의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강필주가 장부천을 주군으로 모시는 것 같지만, 관계의 주도권은 강필주에게 있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두 명의 재벌 3세가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강필주는 높은 곳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며 이기는 쪽으로 가겠노라 말한다. 장부천은 강필주를 붙잡기 위해 무릎을 꿇고, 심지어 얻어맞는다. 그리고 강필주의 조종을 받는다. 강필주가 판을 읽고 전략을 내놓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돌봐주는 노예에게 오히려 종속당하는 주인의 역설이다.

둘째, 강필주와 정말란 사이에 묘한 섹슈얼리티적 긴장이 흐른다. 정말란은 아들뻘인 강필주를 곁에 두고 의지하며, 자신의 약함까지 드러낸다. 강필주가 나모현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정말란은 장부천을 진정시키지만, 정작 강필주의 뒤를 쫓아 이를 확인하고는 불같이 화를 낸다. 정말란은 남편을 일찍 여읜 중년여성으로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로 집안 전체를 장악한다. 강필주는 정말란에게 원한을 품고 있지만, 오랜 세월 지근거리에서 신뢰를 주고받으며 애증으로 발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스무살 이상 차이 나는 남녀관계가 종종 등장하지만, 여성이 연상인 텍스트는 <밀회>를 제외하고 찾기 힘들다. 둘 사이에 은밀하게 흐르는 성적 긴장감이 유난히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셋째, 정략결혼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나모현은 수동적인 정치인의 딸이 아니라, 나름 자율적인 주체이다. 환경운동가인 그는 정략결혼은커녕 소개팅도 거부한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욕망의 구도는 바뀌지 않는다. 나모현이 원하는 ‘운명적 사랑’을 위해 ‘시라노 연애조작단’에 버금가는 기획이 따라붙는다. 드라마는 여기에 장르적 재미를 끼얹는다. 연애를 지휘하는 강필주와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장부천 중에서 나모현이 진짜 사랑한 것은 누구일까. 드라마에서 정략결혼은 낭만적 사랑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한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대안 세력을 흡수하며 커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저항문화마저 ‘힙한’ 상품으로 흡수한 채, 반동적인 시스템은 생명을 연장한다. 드라마가 사랑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양면적이다. 순수한 사랑을 꿈꾸었으나 자기 감정에 속아 가장 혐오했던 정략결혼의 세계로 들어선 나모현을 통해, 드라마는 ‘이처럼 쉽게 조작되는 것이 사랑이라면 얼마나 취약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필주와의 사랑을 복병으로 남겨두고 있다. 진실을 안 나모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재벌가의 며느리로서 은밀하게 강필주를 도와 강필주의 복수도 완성하고 둘의 사랑도 완성하는 서사를 따른다면, 운명적 사랑의 승리가 선포될지도 모른다.

넷째, 나모현의 아버지 나기철은 기존 보수여당의 정치인과 이미지가 다르다. 젊어서 노동운동을 했으나, 소련 붕괴 후 스웨덴에서 복지정책을 배워 와 보수여당의 4선 의원이 된 그는 ‘여당 내 야당’을 이끄는 차기 대선주자이다. 그는 탐욕과 협잡으로만 그려졌던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소박하고 가정적이며 아내와도 사이가 좋다. 하지만 그도 돈 없이 정치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재벌과 손을 잡는다. 운동권 출신에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 그의 존재는 최근 달라진 정치지형의 반영이자, ‘386 세대’로 불리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굴절된 면모를 잘 보여준다. 돈 선거였던 당내 경선 결과를 수용하고, 선대위원장 자리를 수락한다는 그의 선언은 사실 재벌의 정략결혼 제의를 받아들이겠다는 신호였다. 이는 두 층위의 진실이 나란히 흐르는 위선적 상황을 잘 드러낸다. 나모현은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하는데, 이는 나모현의 낭만주의와 나기철의 민주주의가 비슷한 모순과 한계점을 지님을 암시한다. 그가 속한 정치세계도 저항세력을 흡수해 발톱을 뽑아버리고, 낡은 체제를 온존시키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왜 날고 기던 개혁적인 인사들이 정치권에 수혈되어도 타락한 정치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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