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06 18:16
수정 : 2018.04.07 01:13
[토요판] 황진미의 TV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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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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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일에 방송된 <김생민의 영수증>은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키즈 카페를 배경으로 도경완과 손준호가 쏟아내는 이야기는 무척 신선했다. 자신을 장윤정의 남편이자 연우 아빠로 소개한 도경완과, 김소현의 남편이자 주안이 아빠로 소개한 손준호는 자신보다 사회경제적 성취가 높은 연상의 아내와 살면서 육아에 매진 중이다. 심지어 수입이 백배나 차이 난다는 도경완은 세심한 애정표현에 서툰 장윤정에게 섭섭했던 속내를 드러내다 울컥한다. 어떤 여성과 결혼하였든 생계노동자라는 남성의 지위를 당연시하며, 보살핌 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돌리는 남성들이 만연한 사회에서, 고정된 성역할을 깨주는 유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생민의 영수증>은 이를 마지막으로 종영하게 되었다. 이튿날 김생민의 성추행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김생민의 성추행은 안희정의 성폭행만큼이나 충격파가 크다. 김생민이 25년 만에 전성기를 누린 이유와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는 성실하고 알뜰하고 겸손한 이미지로 대중의 호감을 샀다. 유흥으로 의리를 쌓거나 패거리 문화에 익숙한 주류 남성들과는 다른 캐릭터였고, 아내를 존중하고 가정에 충실한 남자임이 수시로 강조되었다. 그런 김생민마저도 성추행의 가해자였다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성추행이 있었던 10년 전 김생민은 인기 연예인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자 스태프 앞에서 그는 상당한 권력자였다. 회식 자리에서 두 명의 여성을 성추행하였고, 피해 여성은 2차 가해를 입었다. “이런 일로 출연진이 교체되는 일은 없다”며 제작진이 피해 여성을 퇴출했다니, 그동안 ‘이런 일’과 2차 가해가 얼마나 흔히 벌어졌던 걸까. 6개월 전부터 최고 인기를 누리던 김생민은 출연 프로그램이 10여개이고 광고가 20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 모든 영광이 화로 돌아왔다. 직업을 잃은데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수십억원의 광고 위약금을 물어주게 생겼으니, ‘진정한 재테크는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란 알토란 같은 경제 상식을 교훈으로 남긴 채 사라지게 된 것이다.
김생민의 패가망신이야 자업자득이지만, <김생민의 영수증>이 폐지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김생민의 이름을 내세우긴 했지만, 송은이와 김숙이 프로그램의 주축이었기 때문이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의 파생상품이었다.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에 경제 상담 게스트로 나온 김생민이 인기를 얻자,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이 독립해서 나왔고, 그 형식 그대로 티브이(TV) 예능프로그램이 되었다. 티브이에서 출연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 예능인들이 자구책으로 만든 팟캐스트가 김숙의 ‘가모장’ 캐릭터와 김생민의 ‘통장 요정’ 캐릭터를 발굴해내며 변방에서 중심을 타격하고 있었다.
현재 방송 중인 87개의 티브이 예능프로그램 가운데 25개의 프로그램에 여자는 한명도 출연하지 않는다. 87개 프로그램의 출연자들 성비를 분석하면 72 대 28로 남성이 월등히 높다. 요컨대 남자들만 우르르 나오는 프로그램이거나, 여성이 출연하더라도 패거리 남성들 틈에 홍일점처럼 끼어 있는 프로그램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무한도전>(2006)과 <해피 선데이―1박2일>(2007)이 주말 예능의 양대 산맥을 형성한 시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자처하는 남성들이 ‘유느님’ 옆자리 다툼을 하고, ‘호동 형님’의 카리스마 아래로 ‘아는 동생’들이 모여 인맥을 쌓았다. 애초에 비주류 전략을 구사하던 <무한도전>이 주류가 되었다. 수많은 유사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농담처럼 ‘라인’ 운운하던 것은 진담이 되었다. 그동안 여성 예능인들은 하나둘 퇴출되거나 남성 예능인들에 둘러싸인 채 애교를 강요당하거나 외모 비하를 당하였다. 가장 가학적인 남성성을 내세운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에서 지상파 사회자로 자리 잡는 동안 전형적인 여성성을 탈각한 안영미와 강유미가 케이블로, 유튜브로 밀려났다. <해피 투게더 3>에서 박미선과 김신영이 하차하고, ‘조동아리’ 클럽이 입성한 것은 단적인 예이다.
지상파 기획자들은 여성 예능인들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는커녕, 시청률만 탓하며 구별도 되지 않는 남성 일색의 프로그램만 재탕하다가, 송은이가 변방에서 발굴한 콘텐츠를 그대로 받았다. 그나마도 남성 출연자인 김생민을 간판으로 내건 프로그램만 지상파 티브이에서 받아들여진 셈이다. 이처럼 지난한 성차별을 뚫고 지상파 티브이에 입성한 송은이와 김숙이 ‘믿는 도끼’였던 김생민의 성추행으로 다시 퇴출되게 생겼으니, 이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으랴.
강남역 살인사건과 촛불혁명을 경유한 ‘미투 혁명’의 물결은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누가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진들 놀랍지 않다. 기획자라면 간판 출연자의 성폭행으로 프로그램이 갑자기 폐지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남성 출연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기획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폭행 사실이 밝혀졌을 때, 가해자를 추방하되 무고한 이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해야 한다. 요컨대 김생민은 퇴출하되, 송은이와 김숙을 주축으로 한 새로운 기획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나아가 이영자, 박미선, 김신영, 안영미, 강유미, 신봉선, 이국주, 박나래, 박지선, 김영희 등 여성 예능인들이 무더기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지상파에서 만들어지길 원한다. <무한도전>의 종영에 맞춰, <무한걸즈 시즌 4>를 지상파 주말 예능으로 편성하라!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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