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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0 18:33 수정 : 2018.04.20 20:04

[황진미의 TV 톡톡]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제이티비시(JTBC) 제공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제이티비시·JTBC)가 연일 화제다. 손예진·정해인이 빚어내는 예쁘고 달달한 화면이 세상 시름을 잊게 하는데다, 연하남과의 비밀연애란 설정이 두근거림을 더한다. 드라마는 매우 절묘하다. 30대 여성의 현실과 판타지가 흑백 대비처럼 배치된데다, 남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면이 있다. 가령 집이나 직장 같은 일상 공간에서 누나 친구와의 아슬아슬한 스킨십은 대표적인 야설의 상상이다. 또한 드라마는 기존 로맨스의 틀을 뒤집는 진보적인 면모를 띠면서도 여전히 익숙한 젠더구도에 발을 담근다. 그 결과 여성과 남성, 진보적인 시청자와 관습적인 시청자들이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며 환호하는 기적이 만들어진다.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이 절묘한 절충과 줄타기에 있는 듯하다.

드라마는 30대 여성의 극악한 현실을 묘사한다. 직장 내 성희롱, 전 애인의 젠더 폭력, 부모의 결혼 압박, 나이로 인한 자존감 하락 등이 상세히 그려진다. 윤진아(손예진)의 직장은 여초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부장급 이상은 죄다 남자들이다. 극한의 감정 노동이 요구되고, 성희롱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한편 전 애인은 “곤약 같다”는 말로 이별을 고하지만, 사실은 양다리였다. 이후 스토킹,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 다양한 젠더 폭력을 구사한다. 또한 엄마는 속물적인 중산 계급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스펙 좋고 집안 좋은 남자와 결혼하라고 들볶는다. 윤진아는 더이상 젊지 않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위축되어 있다. 이런 현실과 대비되어 서준희가 나타난다. “진짜 사랑은 안 해봐서 모르겠고, 내 미래는 어영부영 살다가 대충 조건 맞는 남자랑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라 말하는 윤진아에게 ‘진짜 사랑’과 ‘뻔하지 않은 미래’를 선사할 유니콘 되시겠다.

서준희(정해인)는 윤진아의 ‘절친’ 경선(장소연)의 4살 아래 동생이다. 경선은 둘의 로맨스를 상상하지 못한다. 나이 차이와 유사친족이라는 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금기는 절대적이지 않다. 드라마는 윤진아의 한살 아래 동료가 서준희에게 적극 구애하는 것을 보여주며, 나이차는 별문제가 되지 않음을 자백한다. 대신 유사친족 금기를 강화하기 위해, 두 집안의 유대를 특별하게 그린다. 그런데 2013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4>(티브이엔·tvN)에서 보았듯이, 친오빠와 동생 같은 사이의 로맨스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와 달리 누나-동생 사이의 로맨스가 낯설게 여겨지는 이유는 뭘까. 남성이 주도하는 이성애 역할극에 맞지 않아 배척되어왔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누나-동생 사이의 로맨스는 왜 불가능한지’ 반문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하지만 누나-동생 관계임에도, 기존 이성애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진부하다.

드라마 제목과 달리 초반에 주로 밥을 산 것은 서준희였다. ‘밥 사달라’는 말은 서준희가 연상 여성을 편하게 공략하는 팁이다. 서준희는 ‘밥 사주겠다’며 오만하게 구는 남자들과 좀 다르다. 자신의 호감을 무조건 들이밀지 않고, 적절히 표하며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하지만 그는 귀여운 동생 역할을 거부한다. 오히려 윤진아에게 “작고 귀엽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진아가 젠더 폭력을 겪는 상황에 자주 나타나 완력을 쓴다. 여성의 귀여움과 남성의 마초성을 강조하는 이성애 모델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누나-동생’ 사이라는 진보적 구도를 취하면서도 남성 주도의 이성애 모델을 크게 훼손하지 않기 위해, 윤진아의 순진성이 강조된다. 일 잘하는 35살 직장인이자 연애 경험도 있는 여성이지만, 윤진아는 사적 관계에서 20대처럼 행동한다. 독립 능력이 있음에도 엄마의 끔찍한 잔소리를 견디며 살고, 외박 사실을 들키자 아빠에게 무릎 꿇는다. 남동생에게는 무시당하는 누나이고, 경선에게는 딸 같은 친구이며, 직장 후배에게 연애상담을 할 정도로 미숙한 존재다. 즉 나이만 연상이지, 여전히 동안이고 여전히 순진하고 여전히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여자로 서준희 앞에 놓이는 것이다.

드라마가 직장 성희롱의 구조를 상세히 보여주고 젠더 폭력의 위험을 그리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젠더 폭력의 수위가 점점 높아짐에도, 이를 두 사람의 로맨스를 이어주는 장치인 양 활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또한 서준희가 자꾸만 보호자처럼 나타나 전 애인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윤진아도 모르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젠더 폭력을 당한 윤진아가 서준희에게 미안해하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하다.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 사적 관계의 남성이며, 여성을 두고 남자들끼리 힘겨루기를 하는 가부장적 구도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또한 직장 성희롱이 직장 문화의 변화로 개선되는 과정을 그리면서도, 그 시작이 ‘서준희의 사랑을 받는 나’로 자존감이 높아져 부당한 성희롱을 거부하게 되었다는 서사도 지지할 수 없다. 여성의 척박한 현실을 푸는 열쇠가 ‘남자에게 사랑받음’에 있다거나, 성희롱 거부가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성으로서의 마땅한 처신’인 양 오인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최대 미덕은 윤진아의 성장과 여성들 간의 연대를 표방하는 데 있다. 그런 만큼 둘의 연애가 가족의 승인을 받아 ‘뻔한 결혼’으로 봉합되거나, 윤진아와 경선의 자매애가 훼손되는 것으로 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 윤진아의 성장과 여성들 간의 연대가 드라마 끝까지 관철되기를 응원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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