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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07 15:16 수정 : 2019.06.07 18:59

황진미의 TV톡톡

<가시나들>(문화방송)은 한글을 배우는 노년 여성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에서 파생된 콘텐츠로, 맛보기 편성 4회 중 3회가 방송되었다. 전국에 한글을 모르는 성인은 약 311만명으로, 성인 인구의 7.2%에 이른다. 주로 농어촌 지역의 노년 여성들인데,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가난과 성차별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과거 이들의 교육은 ‘민간야학’에 맡겨져 있었으나, 2006년부터 정부의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이 시작되면서 현재 전국에 389개 성인문해 교육기관이 운영 중이다.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은 문맹으로 살아온 노년 여성의 ‘한’을 내세우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이들의 일상을 재미나게 담았다. 이들을 가족 안의 모성적 존재인 ‘할머니들’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웃고 떠드는 ‘가시나들’로 부른 것도 나름 의미 있다. 이처럼 노년 여성을 유쾌한 주체로 바라보는 시각은 처음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밀양 아리랑>은 송전탑 반대투쟁에 나선 노년 여성들을 피해자의 서사에 가두지 않고, 씩씩한 활력으로 담아냈다.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선생님이 “내 나이가 올해 아흔입니다.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 아닙니까?”라고 외치고 다닌 것이나,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영어를 익힌 나옥분이 호프집에서 외국인 청년들에게 말을 걸던 모습도 같은 맥락을 지닌다. 차별과 배제를 통해 자기 언어를 빼앗겼던 하위주체들이 자기 언어를 지닌 주체가 되어 발언하는 행위에는 회한을 넘어선 자기긍정의 에너지가 넘친다.

<가시나들>도 노년의 유쾌함을 담는다. 제목을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로 새롭게 풀이하고, ‘아모르 파티’를 부르며 ‘운명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취지가 좋고 감동을 기본 값으로 두기에, 비판의 말을 꺼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몇 가지 미심쩍은 점들이 있다. 다큐멘터리가 예능으로 바뀌면서, ‘애기 짝꿍’이란 이름의 젊은 연예인이 대거 합류했다. 젊은이들이 사라진 시골에 이들의 존재는 이질감을 뿜는다. 노년 여성들은 젊은이들의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하거나, 촬영하는 스태프들에게 자꾸 음식을 권한다. 이처럼 노년 여성들의 주의가 외부인들에게 쏠리다 보니, <칠곡 가시나들>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노년 여성들끼리의 상호작용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곳은 신인들이 얼굴을 알릴 기회의 장이자, 노년 여성들과 얼마나 살갑게 교감하는지를 두고 총체적인 인성을 평가받을 시험대가 된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냈던 ‘하방’이 연상되기도 하고, <아이돌 체육대회> <본분 금메달> <잘 먹는 소녀들>처럼 연예인을 비본질적인 능력으로 평가하는 애먼 기획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왜 노인 여성을 비추는 자리에 ‘애기 짝꿍’이 필요할까. 그것은 ‘손녀의 시선을 경유한 할머니’의 구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박 난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를 비롯하여, 최근 등장한 유튜브 채널 <영원씨> <심방골 주부> <할담비 지병수> 등도 공유하는 구도다. 조손관계는 부모-자식 간의 기싸움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데다 세대 간 격차가 확연한 까닭에 친밀감과 이질감이 공존한다.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가 더 이상 엄마에게서 찾을 수 없는 시원의 모성을 담은 존재였던 반면, 박막례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존재다. 무학에 평생 힘든 노동을 하며 살아왔지만 화려한 꾸밈과 여행을 즐긴다. 박막례가 인기 있는 이유는 “남의 장단에 맞추려 하지 말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된당께” 같은 투박하지만 통찰이 담긴 말들로 손녀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해방감을 안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시나들>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개 짖는 소리를 “멍멍”이 아닌 “공공”으로 적는 것은 다양성의 인정이다. 하지만 “결혼은 선택”이라는 ‘아모르 파티’의 가사가 “결혼은 꼭 해”로 바뀌거나, 김춘수의 <꽃>에 대한 감상이 “영감의 꽃이 되고 싶다”고 귀결되는 것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것은 의아하다. 이들의 말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한 귀로 흘려버리며, 소통이 된 듯한 분위기에 취하는 것은 상대를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이는 어린이,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과 대화할 때 자주 빠지는 오류로, 상대를 ‘무해한 타자’로 둔 채 모든 말을 수긍하겠다는 자세를 취하지만, 정작 그들의 말뜻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태도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낸 노년 여성의 편지는 글을 몰라서 겪었던 과거의 고통보다 배움에 도전하는 현재의 기쁨에 방점이 찍힌 내용이었지만, 눈물이 부각되는 분위기 속에서 자칫 이들이 연민의 대상으로 비치진 않았는지 우려스럽다.

<박막례 할머니>의 손녀는 박막례의 말들을 ‘어록’이라 칭하고, <할배의 탄생>의 저자는 가난한 ‘할배’들의 생애사를 들으며 그들의 반동적 사고를 분석하는 눈을 포기하지 않았다. ‘태극기 시위’에서 확인되듯, 노인은 결코 탈역사적이거나 탈이념적인 존재가 아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각자 체득한 세계관을 지닌다. 하지만 <가시나들>은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노년 여성을 순진무구한 존재로 여기며 연민의 시선을 드리운다. 최근 노인 콘텐츠의 범람이 어쩌면 ‘태극기 시위’ 등을 통해 느낀 노인에 대한 혐오를, 노인들을 귀여운 대상인 양 바라보는 ‘노인 모에화’(대상을 작위적으로 귀엽게 묘사하거나 미화시키는 것)로 희석하려는 무의식의 발로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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