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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2 15:40 수정 : 2019.08.02 19:13

[황진미의 TV 톡톡]

제이티비시 제공

<캠핑클럽>(제이티비시)이 화제다. 하기야 ‘핑클’ 완전체가 17년 만에 뭉쳤으니, 화제가 될밖에. 그러고 보니 놀랍다. 부침 많은 연예계에서 4명의 멤버 모두 성공적으로 경력을 이어가니 말이다. 이효리는 솔로 가수이자 예능의 신으로 정상에 올랐다가, 이제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전파하는 ‘명사’가 되었다. 그가 채식을 하고 유기견을 보살피고 제주도에 내려가 느긋한 삶을 즐기는 것 자체가 콘텐츠다. <효리네 민박>(제이티비시)은 이를 활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본래 성악을 했던 옥주현은 라디오 디제이를 거쳐 2005년에 뮤지컬 무대로 진출한 뒤, 2012년 <엘리자벳> 공연을 기점으로 최고의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그의 도전과 성취는 체력, 외모, ‘요가 다이어트 비디오’ 등과 함께 자기계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의 성형은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목표를 위해 자신의 신체와 경력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노력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4명 중 유일하게 비혼이라는 점도, 야망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사표가 될 만하다. 이진은 원래 꿈꾸던 연기자의 길을 갔다. 시트콤으로 시작해 사극, 일일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으며, 아이돌 출신임에도 연기력 논란이 없었다. 성유리 역시 연기자로 성장해나갔다. 초반에는 연기력 논란을 겪었지만, 꾸준히 경력을 이어가 주연 배우로 손색없는 연기자가 되었으며,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하였다.

이들은 모두 시대를 무사히 건너왔다. 개인사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아무도 망가지거나 낙후되지 않았다. 1세대 아이돌 그룹 중 4대 천왕으로 불리던 에이치오티, 젝스키스, 에스이에스, 핑클 중 범죄 경력이 없는 유일한 그룹이다. 2002년 4집 음반 발표를 끝으로, 해체 선언 없이 개인 활동에 돌입했던 핑클이 “각자 영역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고, 시간 날 때 다시 뭉치자”는 약속을 지키게 된 셈이다.

<캠핑클럽>은 4명의 멤버가 캠핑카를 몰며 국내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수많은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캠핑클럽>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꽃보다 할배>시리즈. <짠내 투어> <뭉쳐야 뜬다> 등이 해외 유명 관광지를 패키지 상품처럼 도는 것과 달리, <캠핑클럽>은 알려지지 않은 국내 여행지를 ‘캠핑’이라는 심화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해외여행의 경험은 흔해졌지만, 캠핑은 못해본 사람이 많다. 더욱이 캠핑카를 몰고 며칠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슬로우 여행’은 보편화되지 않았다. 프로그램은 ‘국내에 이런 곳이 있었나’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절경을 보여준다. ‘용담 섬바위’ 같은 생소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경주를 가더라도 불국사 같은 명승지가 아니라 화랑의 언덕, 황리단길, 롤러장 등 새로운 명소를 보여준다. 최근 일본여행 불매 분위기와 맞물려 국내여행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 유용한 콘텐츠다.

이곳에서 4명의 멤버들은 과거의 영광을 복원하거나 추억하기보다 현재의 편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급조된 그룹으로 활동하며 지지고 볶던 시절의 회한이나 각자 분야에서 자리 잡기 바빠서 서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시절의 미안함을 털어놓으며, 이제야 더 깊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애틋함을 나눈다. ‘핑클’ 시절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던 이효리와 이진이 이른 아침 카약을 타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장면은 무척 정겹다.

사실 여자들끼리 운전해서 어디론가 가고, 불을 지피고, 밥을 해먹는 모든 과정이 해방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이 자기 의지에 따라 직접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행동반경을 넓히는 체험은 독립심을 키워준다. 하지만 이는 주로 남성들에게 권장되는 체험이었다. 이들이 캠핑카, 카약, 자전거, 스쿠터,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 눈물 나게 활기차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그동안 여성들에게 가해져왔던 암묵적인 억압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이들의 평균 나이가 40살이다. 여자 나이 마흔. 인생도 알만큼 알아 편안해진 시기이고, 외모나 신체적인 능력은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정신적인 능력이나 사회적인 경력은 정점에 이르거나 새롭게 확장되는 중이다. 하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도 40살 여성은 그저 젊음을 잃은 존재로 묘사되어왔다. 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이자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남성 중심적 시선의 반영이다. 하지만 ‘여혐’의 콩깍지를 벗고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흔히 핑클은 ‘요정’으로 수식되어왔지만, 데뷔부터 지금까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털털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성유리가 ‘루비’ 가사를 곱씹으며, “수동적이야. 우리 스타일이 아니네”라 말하는 장면은 기획된 소녀성을 재현해온 이들이지만, 개별적인 주체성은 그와 다르게 성장해 왔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이들이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치열하게 분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걸그룹 멤버들을 그저 대상화된 존재로 폄하하거나, 고작 보이그룹 멤버의 연인으로 간주해 질시하는 시선이 있어왔다. 이런 시선이 얼마나 여성혐오에 찌든 잘못된 사고의 산물이었는지 진지하게 돌아볼 때가 되었다. 그 시절 열애설이 났던 보이 그룹 팬들에게 테러 위협을 당했던 베이비복스의 노래에 유난히 여성주의적인 가사가 많았던 것이 순전히 우연일까.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더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 출연할 <삼시세끼>(티브이엔) ‘산촌’편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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