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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9 18:17 수정 : 2018.04.19 19:20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지난 17일 정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구내 추모비 앞. 좌익계 독립운동가인 권오설(1897~1930)의 88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안동 출신인 권오설은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이자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로 1926년 6월10일 순종 인산에 맞추어 대규모 만세운동을 계획했다가 체포되었으며 5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고문 후유증으로 1930년 4월17일 타계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와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태호 박종철출판사 대표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공산주의 운동을 하고 있는 좌익 공산주의자 오세철입니다”라고 공개석상에서 떳떳하게 발언하는 오 교수의 기개가 감탄스러웠다.

추모객 속에 소설가 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얼마 전에 실록 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를 낸 안재성, 그리고 전태일문학상 수상 작가로 산문집 <아들아, 넌 어떻게 살래?> 등을 낸 최용탁이 그들이었다. 역사 인물 추모 행사에 세 소설가가 나란히 참석한 게 이채로워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김성동이 좌익계 혁명가 및 독립운동가 열전인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의 지은이이고, 안재성은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경성 트로이카> 등으로 역사 인물 찾기 작업에 매진해 온 작가이며, 최용탁 역시 <남북이 봉인한 이름 이주하>를 낸 바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한결 이해가 쉬울지 모르겠다.

사실 이 세 소설가는 이날 행사의 주최 측인 셈이었다. 이들은 벌써 10년 가까이 이날 추도식과 비슷한 모임을 이어 오고 있다. 날짜는 해마다 같은 4월17일. 이날은 1925년 서울 황금정 중식당 아서원에서 김재봉·박헌영·조봉암 등이 조선공산당을 창당한 날짜다. 그러니까 권오설의 88주기는 동시에 조선공산당 창당 93주년이기도 했던 것. 세 소설가는 2010년 아서원이 있던 자리에서 첫 모임을 한 데 이어 김삼룡의 고향인 충주와 김성동의 선친을 비롯한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당한 대전 산내, 이현상이 최후를 맞은 지리산 빗점골 등을 찾아 좌익계 혁명가 및 독립운동가 들을 추모해 왔다. 이날 김성동이 작성해 나눠준 ‘조선공산당 애사(哀詞)’는 그런 추모의 마음을 대변한다 하겠다.

“더불어 함께 똑고르게 일하고 똑고르게 노느매기하여 똑고르게 살아가는 ‘고루살이 세상’을 열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제국주의 세력과 그 앞잡이 사냥개들 총칼에 막혀 뜻을 펼치지 못하셨으니, 또한 이 겨레 명운(命運)이었다는 말이옵니까? (…) 오늘 님들을 기리는 몇 사람이 모여 자그마한 제상으로 님들 옷소매 잡고 매달릴 뿐이오니, 이 땅에서 제국주의자와 그 앞잡이 사냥개들을 쫓아내고, 계급해방을 이룬 바탕에서 조국해방을 이룰 그날까지, 저뉘로 가지 마소서.”

오랜만에 만난 김성동은 무척 쇠약해 보였다. 한 달 전쯤 모친상을 치르고 <한겨레> 생활광고 지면에 감사 인사를 싣는 일로 통화할 때만 해도 목소리에 힘이 있었는데, 그사이 몸과 마음이 되우 상한 듯했다. 박헌영의 비선(秘線)이었던 남편을 좇아 그의 어머니 역시 면 여맹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옥고까지 치렀다. 그가 2012년에 발표한 단편 <민들레꽃반지>는 치매에 걸려 여맹위원장 시절 노래를 부르며 남편이 선물한 민들레꽃 무늬 반지를 정성껏 닦던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추도식을 지켜보자니 김성동이 전화로 불러주었던 인사 문구가 떠올랐다. “새 세상을 그리워하며 ‘민들레꽃반지’를 닦던 제 어머니 열반에 향을 사뤄 주신 어른들께 엎드려 큰절을 올리나이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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