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선임기자 ‘현승치’를 아시는지? 평론가 염무웅이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했을 때, 공주 부모님 집에 머물던 그에게 전보를 보내 당선 사실을 알려준 친구의 이름이다. ‘친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친구들’이라 해야 정확한 것이, 이 이름은 염무웅의 서울 문리대 세 동기(김현·김승옥·김치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새로 만든 것이었다. 얼마 전에 출간된 그의 대담집 <문학과의 동행>에 실린 자전적 후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염무웅은 김현과 김승옥 등이 만든 <산문시대> 동인에도 합류했다. <산문시대>는 역시 김현이 주도한 <68문학>을 거쳐 계간지 <문학과지성>으로 발전하며 지금 문학과지성사의 토대가 되었지만, 염무웅은 그 뒤 <창작과비평>의 편집자로 일하며 진보 문학 진영의 핵심 비평가로 자리잡는다. ‘4·19 세대’로 뭉뚱그려지던 이들이 ‘문지’와 ‘창비’로 분화하게 된 것. <문학과의 동행>에 실린 대담들에는 김현에 관한 언급이 적잖이 나오는데, 사뭇 냉정하고 비판적이어서 눈길을 끈다. 염무웅은 김현이 1988년에 낸 평론집 <분석과 해석> 머리말에서 4·19 세대를 자임한 것을 보며 의아했다고 한다. “오히려 4·19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간 사람이 아닌가” 해서였다고. 그는 김현 식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역시 4·19의 일부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처럼 ‘분석과 해석’은 열심히 했지만, 민주주의의 방향과 시민사회의 윤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은 별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보수우익 성향의 자유주의자” 김현에 대한 그의 판단이다. 김승옥에 대한 비판도 신랄하다. “스무살 남짓 젊은이가 쓴 작품답게 치기라고 느껴지는 요소도” 많고, “박태원이 1930년대에 이룩한 성취를 김승옥은 1960년대 현실의 감각과 언어로 반복한 것뿐”이라는 것. 역시 ‘문지’ 계열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독문과 동기인 이청준을 두고도 “너무 정신유희적인 쪽 내지 관념적인 도식으로 가는 듯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의 엄혹한 현실에서 너무 비켜서 있다는 느낌” 때문에 거리가 느껴졌다고 술회한다. 같은 문지 계열이라도 소설가 김원일과 평론가 김병익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을 내놓는다. 월북한 아버지를 다루는 방식에서 이문열과는 상반된다는 점에서 김원일을 주목하고, “‘문지’의 중심이면서도 글과 행동을 통해 시민적 책임을 견지하려고 애써왔다”고 김병익을 평가한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세상 안에서,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 하는 작업”이라는 믿음에 입각한 판단일 테다. ‘문지’ 쪽의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사회문제를 다루되 미학적 완결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문학관에 따라, “예술적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 보인다”며 80년대 참여문학을 비판하는 그의 균형감각은 신뢰할 만해 보인다. <문학과의 동행>에는 이밖에도 소중한 문단사적 증언과 귀담아들을 만한 견해가 풍성하다. 출판사 근무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아르놀트 하우저) 번역 경험이 평론가로서, 연구자로서 큰 도움이 됐다는 자평이 눈에 뜨인다. 자신은 “독문학도로서의 직업과 문학평론가라는 본업 사이의 갈등”에 내내 시달렸다면서도, 이즈음 한국 문단에 외국문학 전공 비평가가 드문 것을 두고서는 “동종교배”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2005년 북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 그리고 이듬해 남과 북의 작가들이 금강산에 모여 결성한 6·15민족문학인협회 뒷얘기도 흥미롭다. bong@hani.co.kr
칼럼 |
[최재봉의 문학으로] ‘현승치’를 아시나요? |
책지성팀 선임기자 ‘현승치’를 아시는지? 평론가 염무웅이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했을 때, 공주 부모님 집에 머물던 그에게 전보를 보내 당선 사실을 알려준 친구의 이름이다. ‘친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친구들’이라 해야 정확한 것이, 이 이름은 염무웅의 서울 문리대 세 동기(김현·김승옥·김치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새로 만든 것이었다. 얼마 전에 출간된 그의 대담집 <문학과의 동행>에 실린 자전적 후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염무웅은 김현과 김승옥 등이 만든 <산문시대> 동인에도 합류했다. <산문시대>는 역시 김현이 주도한 <68문학>을 거쳐 계간지 <문학과지성>으로 발전하며 지금 문학과지성사의 토대가 되었지만, 염무웅은 그 뒤 <창작과비평>의 편집자로 일하며 진보 문학 진영의 핵심 비평가로 자리잡는다. ‘4·19 세대’로 뭉뚱그려지던 이들이 ‘문지’와 ‘창비’로 분화하게 된 것. <문학과의 동행>에 실린 대담들에는 김현에 관한 언급이 적잖이 나오는데, 사뭇 냉정하고 비판적이어서 눈길을 끈다. 염무웅은 김현이 1988년에 낸 평론집 <분석과 해석> 머리말에서 4·19 세대를 자임한 것을 보며 의아했다고 한다. “오히려 4·19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간 사람이 아닌가” 해서였다고. 그는 김현 식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역시 4·19의 일부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처럼 ‘분석과 해석’은 열심히 했지만, 민주주의의 방향과 시민사회의 윤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은 별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보수우익 성향의 자유주의자” 김현에 대한 그의 판단이다. 김승옥에 대한 비판도 신랄하다. “스무살 남짓 젊은이가 쓴 작품답게 치기라고 느껴지는 요소도” 많고, “박태원이 1930년대에 이룩한 성취를 김승옥은 1960년대 현실의 감각과 언어로 반복한 것뿐”이라는 것. 역시 ‘문지’ 계열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독문과 동기인 이청준을 두고도 “너무 정신유희적인 쪽 내지 관념적인 도식으로 가는 듯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의 엄혹한 현실에서 너무 비켜서 있다는 느낌” 때문에 거리가 느껴졌다고 술회한다. 같은 문지 계열이라도 소설가 김원일과 평론가 김병익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을 내놓는다. 월북한 아버지를 다루는 방식에서 이문열과는 상반된다는 점에서 김원일을 주목하고, “‘문지’의 중심이면서도 글과 행동을 통해 시민적 책임을 견지하려고 애써왔다”고 김병익을 평가한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세상 안에서,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 하는 작업”이라는 믿음에 입각한 판단일 테다. ‘문지’ 쪽의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사회문제를 다루되 미학적 완결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문학관에 따라, “예술적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 보인다”며 80년대 참여문학을 비판하는 그의 균형감각은 신뢰할 만해 보인다. <문학과의 동행>에는 이밖에도 소중한 문단사적 증언과 귀담아들을 만한 견해가 풍성하다. 출판사 근무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아르놀트 하우저) 번역 경험이 평론가로서, 연구자로서 큰 도움이 됐다는 자평이 눈에 뜨인다. 자신은 “독문학도로서의 직업과 문학평론가라는 본업 사이의 갈등”에 내내 시달렸다면서도, 이즈음 한국 문단에 외국문학 전공 비평가가 드문 것을 두고서는 “동종교배”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2005년 북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 그리고 이듬해 남과 북의 작가들이 금강산에 모여 결성한 6·15민족문학인협회 뒷얘기도 흥미롭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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