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선임기자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며 은인자중 맡은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 (…)” 최인훈의 연작소설 ‘총독의 소리’ 도입부는 섬뜩한 이물감으로 독자를 아연 긴장시킨다. 8·15 해방으로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난 수십년 뒤에도 조선총독부 조직이 암약하고 있으며 그들이 병력과 첩보력을 보유했음은 물론 해적 방송까지 송출한다는 설정이 주는 충격이다. 식민 지배의 추억에 취한 채 그 추억의 재현을 꿈꾸는 자의 한갓 망상이라 치부하기에는 방송 내용의 현실적 울림이 심상치 않다. “귀축 미국을 설득시켜 반도의 경영권을 이양받을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를 본인은 입수하고 있거니와 (…) 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 총독부의 방침에 대한 호응자를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역대 정권의 매판성, 남북 사이의 대결과 전쟁 유도,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경영권을 다시 일본에 넘기도록 한다는 공작, 총독부 방침에 호응하는 한국인들의 존재… 지하의 조선 총독이 희망과 믿음의 근거로 드는 것들은 지금 읽기에도 불길하기 짝이 없다. 역설과 반어의 틀을 빌린 날카로운 역사관이요 현실 인식이다.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의 자매편이라 할 ‘주석의 소리’라는 단편 또한 남겼다. 역시 8·15와 더불어 역사에 편입된 상해 임시정부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아직 남아 있다는 설정 아래, 임시정부 주석이 3·1절을 맞아 동포들에게 보내는 담화 형식이다. 국가와 국민, 정부, 기업, 지식인 등으로 항목을 나누어 그 각각에게 당부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에 대한 방위력의 궁극적인 기초입니다” “기업의 공익성에 대해 최대의 노력과 자제를 보이지 않으면 야단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같은 식이다. ‘총독의 소리’에 비해 반어적 풍자의 맛은 덜하지만, 역시 작가의 역사의식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뚜렷하다. 최인훈의 소설들이 약한 역사적 가정을 동원했다면, 복거일의 장편 <비명을 찾아서>는 강한 역사적 가정 위에 서 있다. 이 작품은 1945년 이후에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이어지는 상황을 가정한 ‘대체역사소설’이다. 주인공 기노시타 히데요가 멸실되고 감추어졌던 조선 역사와 민족 정체성에 눈을 뜨고 ‘박영세’로 거듭나서는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것이 소설의 얼개다. 박영세가 찾아가는 상해 임시정부는 어쩐지 최인훈 소설 ‘주석의 소리’의 그 임시정부인 것만 같다. 김지하가 1974년 ‘분씨물어’(糞氏物語)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했던 담시 ‘똥바다’는 대대로 조선 및 똥과 원수지간인 일본인 분삼촌대(糞三寸待)가 조상의 원수를 갚고자 평생 참아 왔던 똥을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위에 올라 싸지르다가 제가 싼 똥에 빠져 죽는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른바 ‘친선방한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오는데, “제휴도 합작도 그 어느 것도/ 식민으로 치닫는다 제국이여 만세!/ 아아 평화와 우정의 천사/ 그 이름도 그리운 친선방한단!/ (…) / 보상도 쟁의도 그 어느 것도/ 권력으로 눌러버린다, 매판이여 만세!/ 아아 협력과 건설의 기사/ 그 이름도 그리운 친선방한단”이라는 구절에서 한-일 협력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을 짐작할 수 있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두 나라의 역사와 현실로부터 상상력을 길어 올린 몇 작품을 살펴보았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엄연한 ‘현실’임을 알 수 있다. ‘총독의 소리’의 각 연작 말미에서 불길한 지하 방송을 듣던 ‘시인’이 착잡한 심사를 곱씹으며 ‘어둠’을 내다보거나 “불면제를 먹는다”는 설정은 그런 현실을 대하는 작가의 음울하고 비장한 태도를 보여준다. 아베 정부의 도발 앞에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 다수는 ‘똥바다’의 이런 마지막 대목에 공명하지 않을까. “옛이야기들을 들으면 이렇게 망한 자 부지기수, 어찌 분삼촌대 한 놈뿐일까마는 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똥에 미쳐 똥을 모으고 똥을 기르는 자 요사이도 끊임없으니/ 모를 일이다!/ 아마도 멸망이 또한 매혹인 곳에 풀 수 없는 또 하나 똥의 비밀이 있음에 틀림없으렷다.”
칼럼 |
[최재봉의 문학으로] 제 똥에 빠져 죽은 분삼촌대 |
책지성팀 선임기자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며 은인자중 맡은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 (…)” 최인훈의 연작소설 ‘총독의 소리’ 도입부는 섬뜩한 이물감으로 독자를 아연 긴장시킨다. 8·15 해방으로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난 수십년 뒤에도 조선총독부 조직이 암약하고 있으며 그들이 병력과 첩보력을 보유했음은 물론 해적 방송까지 송출한다는 설정이 주는 충격이다. 식민 지배의 추억에 취한 채 그 추억의 재현을 꿈꾸는 자의 한갓 망상이라 치부하기에는 방송 내용의 현실적 울림이 심상치 않다. “귀축 미국을 설득시켜 반도의 경영권을 이양받을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를 본인은 입수하고 있거니와 (…) 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 총독부의 방침에 대한 호응자를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역대 정권의 매판성, 남북 사이의 대결과 전쟁 유도,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경영권을 다시 일본에 넘기도록 한다는 공작, 총독부 방침에 호응하는 한국인들의 존재… 지하의 조선 총독이 희망과 믿음의 근거로 드는 것들은 지금 읽기에도 불길하기 짝이 없다. 역설과 반어의 틀을 빌린 날카로운 역사관이요 현실 인식이다.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의 자매편이라 할 ‘주석의 소리’라는 단편 또한 남겼다. 역시 8·15와 더불어 역사에 편입된 상해 임시정부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아직 남아 있다는 설정 아래, 임시정부 주석이 3·1절을 맞아 동포들에게 보내는 담화 형식이다. 국가와 국민, 정부, 기업, 지식인 등으로 항목을 나누어 그 각각에게 당부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에 대한 방위력의 궁극적인 기초입니다” “기업의 공익성에 대해 최대의 노력과 자제를 보이지 않으면 야단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같은 식이다. ‘총독의 소리’에 비해 반어적 풍자의 맛은 덜하지만, 역시 작가의 역사의식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뚜렷하다. 최인훈의 소설들이 약한 역사적 가정을 동원했다면, 복거일의 장편 <비명을 찾아서>는 강한 역사적 가정 위에 서 있다. 이 작품은 1945년 이후에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이어지는 상황을 가정한 ‘대체역사소설’이다. 주인공 기노시타 히데요가 멸실되고 감추어졌던 조선 역사와 민족 정체성에 눈을 뜨고 ‘박영세’로 거듭나서는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것이 소설의 얼개다. 박영세가 찾아가는 상해 임시정부는 어쩐지 최인훈 소설 ‘주석의 소리’의 그 임시정부인 것만 같다. 김지하가 1974년 ‘분씨물어’(糞氏物語)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했던 담시 ‘똥바다’는 대대로 조선 및 똥과 원수지간인 일본인 분삼촌대(糞三寸待)가 조상의 원수를 갚고자 평생 참아 왔던 똥을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위에 올라 싸지르다가 제가 싼 똥에 빠져 죽는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른바 ‘친선방한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오는데, “제휴도 합작도 그 어느 것도/ 식민으로 치닫는다 제국이여 만세!/ 아아 평화와 우정의 천사/ 그 이름도 그리운 친선방한단!/ (…) / 보상도 쟁의도 그 어느 것도/ 권력으로 눌러버린다, 매판이여 만세!/ 아아 협력과 건설의 기사/ 그 이름도 그리운 친선방한단”이라는 구절에서 한-일 협력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을 짐작할 수 있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두 나라의 역사와 현실로부터 상상력을 길어 올린 몇 작품을 살펴보았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엄연한 ‘현실’임을 알 수 있다. ‘총독의 소리’의 각 연작 말미에서 불길한 지하 방송을 듣던 ‘시인’이 착잡한 심사를 곱씹으며 ‘어둠’을 내다보거나 “불면제를 먹는다”는 설정은 그런 현실을 대하는 작가의 음울하고 비장한 태도를 보여준다. 아베 정부의 도발 앞에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 다수는 ‘똥바다’의 이런 마지막 대목에 공명하지 않을까. “옛이야기들을 들으면 이렇게 망한 자 부지기수, 어찌 분삼촌대 한 놈뿐일까마는 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똥에 미쳐 똥을 모으고 똥을 기르는 자 요사이도 끊임없으니/ 모를 일이다!/ 아마도 멸망이 또한 매혹인 곳에 풀 수 없는 또 하나 똥의 비밀이 있음에 틀림없으렷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