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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4 20:46 수정 : 2016.05.27 08:35

강명관의 고금유사

백범 김구는 1949년 1월1일 한국독립당 동지들에게 ‘쟁족운동’(爭足運動)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날이 아니고 다른 날이라는 설도 있지만, 굳이 날을 따질 것은 못 된다. 그냥 해방공간에서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쟁족운동’이란 말은 다리가 되기를 다투자는 말이다. 이건 ‘대가리’가 되기 위해 싸우는 ‘쟁두운동’(爭頭運動)을 의식해서 한 말이다. ‘대가리’란 말이 약간 거북하지만, 백범이 쓴 말이니 그대로 존중해 쓰자.

왜 ‘다리’고 ‘대가리’인가. 백범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나 지금 국내에 들어와서도 보면, 서로 일을 같이 하기로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도 인사 문제에 의견이 맞지 않아 분열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욕심에 날뛰는 그들은, 우두머리 지위가 자기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어제 같이 맹세했던 것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고 분열되는 것을 보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든 분규는 흔히 ‘대가리’ 싸움에서 생긴다. 우리 동지들은 대가리 싸움을 경계해야 한다.”

과거 해외에서 독립운동 할 때는 물론 해방 뒤에도 어떤 일에 의견을 같이하고도, 결국 인사 문제로 인해 분열되는 일이 많은데, 그 원인은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사욕에 있다는 것이다. 백범은, 해방 정국의 허다한 당파와 세력들의 분열과 분규는 민족과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국가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아니 사유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백범은 ‘백족지충(白足之蟲)은 지사불강(至死不僵)’이란 속담을 인용한다. 다리가 백개가 있는 벌레는 죽어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지네처럼 다리가 많은 벌레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는가. 여기서 그는 “민중의 토대 없이 대가리 되는 영수가 있을 수 없고, 하층의 기본 조직 없이 중앙의 영도권이 있을 수 없다”라는 견해를 끌어낸다. 대가리가 되고 싶다면 민중을 토대로 삼아야 하고, 하층의 기본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남들은 ‘대가리 싸움’에 열중하지만 우리는 ‘다리 싸움’을 열심히 하자는 것이 백범의 주장이다.

총선이 코앞이다. 야당의 분열을 보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오직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 필패의 구도를 만들면서 새 정치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심하다. 그래,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권력을 잡으려는 욕망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이 고통의 시대를 구제할 계책이 무어냐고 묻지도 않겠다. 다만 분열을 감행한 그 편협한 정치공학의 셈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도리어 그 정치공학은 대한민국의 보통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고통의 짐을 더 얹을 것이다.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면 대가리 싸움이 아니라, 다리 싸움부터 하는 것이 훨씬 수준 높은 정치공학이 될 것이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자신과 국민을 필망(必亡)의 늪으로 끌어들이니, 정말 어리석구나!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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