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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1 20:00 수정 : 2018.11.01 20:18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청구야담>이란 책에 실린 이야기다.

여자에게는 젖내가 풀풀 나는 아들 둘이 있었다. 그야말로 청상(靑孀)이었다. 한창 일할 남편을 잃었으니, 가세는 기울 대로 기울어 아침을 먹고 나면 돌아서서 저녁때거리를 걱정하는 형편이 되었다.

어느 날 채소라도 심을까 하여 뒤란의 좁은 땅을 뒤적이는데, 무언가가 호미 끝에 걸려 쟁그랑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흙을 조심스레 헤치고 보니 널찍한 돌이 가로 놓여 있었고 그 아래 커다란 단지 하나가 묻혀 있었다. 열어 보니 은(銀)이 한 가득이었다. 과부는 놀란 듯이 돌을 다시 덮고 흙을 모아 밟았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자 했던 것이다. 과부는 은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꺼내지 않았다.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여 아이들을 먹이고 정성을 다해 가르쳤다. 아무리 궁핍해도 은이 있는 쪽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반듯이 자랐다. 둘 다 재상가(宰相家)의 겸인(?人·청지기)이 되어 민첩하고 정직하여 총애를 받았다. 이윽고 한 사람은 선혜청(宣惠廳)의 서리가, 한 사람은 호조(戶曹)의 서리가 되었다(조선후기에는 재상가의 겸인이 되어야 관서의 서리가 될 수 있었다). 선혜청과 호조는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관서가 아닌가. 이곳 서리가 되었다는 것은 수입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집안 형편이 쭉 피었다. 여자는 자식들의 봉양을 받으며 편안한 노년을 보냈다. 손자 일고여덟도 모두 겸인이 되고 서리가 되었다. 시전상인이 된 아이도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집안이 되었던 것이다.

하루는 어머니가 자식과 며느리, 손자를 불러 뒤란의 은단지를 파내게 하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였다.

“옛날 채소를 가꾸려고 땅을 파다가 이 은단지를 보았더니라. 그때 이 은으로 군색한 살림을 면하고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건 또 아니었다. 아버지 없이 크는 너희 둘이 그 은으로 호의호식 하면서 자란다면 무엇이 되겠니? 공부를 하지 않고 주색잡기에 빠질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재물이 아까운 줄 알게 하고, 글공부 외에는 다른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도록 한 것이니라. 다행히 너희들이 다 자라서 각기 하는 일이 있고, 집안 형편도 나아졌구나. 심지도 굳어 이제 큰 재물이 있어도 방탕하게 되지는 않겠구나 싶어 이 은을 꺼내놓는 것이다.”

그 은으로 늙은 부인이 한 일은 무엇이었던가. 굶주린 사람을 먹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히고, 돈이 없어 결혼과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친척을 도왔다. 겨울이면 버선 수십 켤레를 지어 교자를 타고 다니면서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날마다의 일이었다. 추위로 인한 고통 중 발이 시린 것이 가장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과부는 자식의 교육을 망치지 않으려고 은단지를 덮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쓰라고 나라에서 준 돈을 횡령한다. 과부는 횡재한 은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썼건만, 비리 유치원은 횡령한 돈으로 사욕을 채운다. 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아서 횡령을 한다고? 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양심이 갖추어지지 않아서겠지. 제발 이제부터 양심 좀 갖추고 살기 바란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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