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30 06:01
수정 : 2018.11.30 19:39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효종·현종·숙종 3대에 걸쳐 학계와 정계를 지배했던 송시열(宋時烈, 1607~1689)도 딸의 시집살이를 걱정하는 다정했던 아버지였던가 보다. 맏딸을 권시(權?)의 둘째 아들 권유(權惟)에게 시집보내면서 못내 걱정이 되었던지 20조목에 걸쳐 당부하는 글(<우암선생계녀서>(尤庵先生誡女書))을 써 준다. 내용은 ‘시부모를 잘 섬겨라’ ‘남편이 바람을 펴도 질투하지 말아라’ ‘살림을 여물게 살아라’ ‘제사를 잘 지내라’는 등등 그렇고 그런 것들이다.
하나 주목할 것은 ‘노비를 부리는 도리’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송시열이 결혼하는 딸에게 굳이 노비를 인간답게 대우해 주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말을 들어보자. “자식이 부모 섬길 때 손수 밭 갈고 밥 짓고 반찬 장만하고, 손수 나무하여 부모 자는 방에 불 때고, 비바람 피하지 않고 부모의 수고를 대신하면 만고의 효자라 하나니, 요사이는 그런 자식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직접 일을 하여 부모를 봉양하는 자식이 드물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일은 누가 하는가? 노비가 대신 한다. “자식이 못하는 일을 노비가 하여 농사 하고 밥 짓고 반찬 장만하고 원근에 사환(심부름)하니, 아무리 나라의 명분 그리하나 노비 밖에 귀한 것이 없느니라.” 노비는 곧 양반가를 유지하는 모든 노동을 떠맡은 존재다!
노비가 이토록 중요하기에 노비를 인간적으로 잘 대우해 주라고 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송시열의 당부는 정반대의 상황을 의식하여 나온 것이다. 노비는 인간이 아니라 노동하는 도구일 뿐이다. 마음대로 욕을 퍼부을 수도, 구타할 수도 있는 존재다. 돈이 궁하면 팔아버릴 수도 있다. 어떤 경우 죽일 수도 있고,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송시열이 딸에게 굳이 노비를 인간답게 대접하라고 당부한 것은 노비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가 편만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세상 풍속이 조그만 일에도 꾸짖고, 음식도 잘 아니 주고, 의복도 잘 아니 입히고, 크고 작은 죄가 있으면 형장(刑杖)을 과히 쳐서 사경(死境)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위엄 있고 행습(行習)이 엄한 것이라 자랑하되, 하는 일을 하늘이 괘씸히 여겨 그런 사람의 자손이 보전치 못하고 사환이 없으니, 옛사람이 이르되 이 또한 사람의 자식이라 잘 대접하란 말씀이 어찌 옳지 않으리오. 부디 어여삐 여겨 꾸짖지 말고 칠 일 있어도 꾸중하며 과히 하지 말아라.”
걸핏하면 욕을 퍼붓고,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않고, 작은 잘못에도 심한 매질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노비를 부리는 보통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사회가 계급사회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최근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자와 그들의 자식들이 보통의 국민을 대하는 행태를 보건대, 한국사회가 조선과 다를 바 없는 계급사회가 되었음을 절감한다. 송시열은 딸을 가르치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대한민국 지배계급은 그런 교양도 교육도 없는 자들이다. 이것이 지난 백년 뼈 빠지게 ‘조국근대화’에 매진한 결과로 만들어낸 사회인가. 보다 깊은 성찰과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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