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28 08:59
수정 : 2018.12.28 19:59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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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김은호가 그린 율곡 이이의 영정.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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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문(自警文)이란 글이 있다. 불가의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대표적인 것인데, 원효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지눌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야운(野雲)의 ‘자경문’을 한데 묶은 것이다. 다만 이것은 세간을 떠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우리 같은 속세의 보통 사람은 굳이 볼 것이 없다. 보통 사람을 위한 자경문은 유가(儒家)에 꽤 많이 남아 있다. 아마 수십 종은 될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율곡 이이의 ‘자경문’을 들 수 있다.
200자 원고지 3장 분량의 짧은 율곡의 ‘자경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먼저 뜻을 크게 가져서 성인을 준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한다면 나의 일은 끝나지 않는 것이다.” 성인이 되기를 기약하다니! 유가의 ‘성인’이란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신의 아들도 아니고 언어로 표현하기 불가능한 진리를 깨친 사람도 아니다. 성인은 나날의 자기반성의 결과 윤리적 완성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곧 생각과 행동에 윤리적 오류가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마음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평정을 얻는다.
이런 이유로 ‘자경문’은 줄곧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한 노력에 대해 말한다. 마음은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곳저곳 동서남북을 쏘다닌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붙들려 하지 말고, 그냥 관찰하거라!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에 전념하라. 홀로 있을 때도 도덕적인 생각과 행동을 유지하는 데 힘쓰라. 이런 방식으로 훈련을 거듭하면 마침내 평정이 찾아올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아침에 할 일을, 식사 후에는 낮에 할 일을, 잠자리에 들 때는 내일 할 일을 생각한다. 혹 거리끼는 일이 있다면 합당하게 처리할 방도를 찬찬히 생각한다. 그런 뒤에 독서를 한다. 독서는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실천을 위한 것이다. 윤리적 실천을 전제하지 않는 독서는 쓸데없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일상에서 일을 처리할 때 그 일의 본질에서 벗어나서 다른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인은 다른 방법이 아니라 이런 평범한 일상적인 노력을 통해서 될 수 있다는 것이 율곡의 생각이었다.
율곡은 요즘 대학 1, 2학년의 나이인 20살에 ‘자경문’을 지었다. 청소년기를 벗어나자마자 윤리적 완성을 생의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들은 무엇을 생의 목적으로 삼는가. 곰곰이 반추해 보면 돈 많이 벌기와 돈 많이 쓰기가 그것이 아닌가. 사람이 물질적 존재인 이상 의식주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 상품을 구매하여 소비를 하는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인가? 그것만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며 지향해야 하는 유일한 가치인 것인가. 곧 새해다. 나도 새해에는 율곡의 ‘자경문’을 외워볼까. 사흘만이라도 성인이 되어 보자고 작심해 볼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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