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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31 06:00 수정 : 2019.05.31 20:06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가 지난 3월14일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로 인해 국민들이 분열됐다”고 말하자, 이에 문정선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나경원이 토착왜구라고 스스로를 밝혔으니 반민특위에 회부하라”고 논평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가 지난 3월14일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로 인해 국민들이 분열됐다”고 말하자, 이에 문정선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나경원이 토착왜구라고 스스로를 밝혔으니 반민특위에 회부하라”고 논평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임진왜란은 조선으로서는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당한 횡액이었다. 조선 사람이라면 당연히 침략자 왜군을 응징하고 전쟁의 책임을 물어야만 하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부당한 전쟁에서 왜군의 편에 선 자들이 있었다. 평범한 백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지배계급인 사족(士族)을 말하는 것이다. 백성으로 말하자면 왜적에게 잡히면 목숨을 부지하느라 그들에게 부림을 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조정에서도 그런 사정을 알아 전쟁이 끝난 뒤 백성들에게는 책임을 크게 묻지도 않았다. 문제는 조선사회의 지배계급인 사족의 경우였다. 평소 관직과 토지를 독점하고 백성을 부리며 내로라하고 살았던 사족이야말로 앞장서서 왜군과 싸워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사족들 중에는 왜군의 일본의 앞잡이가 된 자들이 적지 않았다.

성세녕(成世寧)은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공조참의, 정주목사를 지냈으니, 나름 확실한 출셋길에 섰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했을까? 이 자는 왜군이 서울로 들어오자 술과 안주를 마련해 맞이하고 첩이 낳은 딸까지 왜장에게 바친다. 이런 자발적 협조를 높이 평가해 왜군은 성세녕을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했고, 성세녕은 그 벼슬을 받아 꽤나 으스댔다고 한다. 그의 일족이 참혹한 전쟁 중에도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성세녕은 아주 드문 예외적인 경우인가. 꼭 그렇지도 않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조경남(趙慶男)의 <난중잡록>(亂中雜錄)을 보면 더 희한한 경우도 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군은 원균의 수군을 격파하고 호남 일대를 점령했다.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는 순창·담양을 근거지로 삼은 뒤 그 부근 일대, 곧 창평(昌平)·광주·옥과(玉果)·동복(同福)·능주(綾州)·화순 등지에 병력을 보내 살인과 약탈을 금하는 포고령을 내리는 등 인심을 무마하면서 조선 사람들의 항복을 유도했다. 이내 왜군에 빌붙는 자들이 등장했고 급기야 시장을 열고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까지 나왔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생원 김우추(金遇秋)라는 자는 자신의 향리인 동복현(同福縣)을 점령하고 있던 왜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인즉 다음과 같다.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며,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습니까? 원하옵건대 살 터전을 받아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나이다.”(何使非民, 何事非君. 願受一廛, 爲聖人氓) 김우추가 지껄인 말은 <맹자>에 근거를 둔 것이지만, 꼭 그 출처를 여기서 꼬치꼬치 밝힐 필요는 없다. 뜻은 빤하다. 일본 왕을 섬기는 일본 백성이 되겠다는 뜻이다. 이 자는 편지 끝에 시도 한 수 써서 붙였다. “칼을 짚고 동해 바다를 건너오시니, 장군은 왕을 도우실 재목이십니다.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장군을 찾아갈 것입니다.”(杖劍渡東海, 將軍王佐才. 殺人如不嗜, 四海盡歸來) 역시 <맹자>의 한 구절을 따온 것인데, 왜군의 통치를 찬양하는 것이다. 남의 나라를 이유 없이 쳐들어와서 무고한 백성을 살육한 자들을 몰아내기는커녕 아첨의 말을 바치며 빌붙다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토착왜구’란 말이 요즘 더러 쓰인다. 최근 임진왜란 관계 자료를 읽던 중 성세녕과 김우추 같은 자들이 토착왜구의 원조 같아서 이렇게 써 본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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