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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5 06:02 수정 : 2019.10.25 15:54

[책&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정조 어진.

1797년 정조는 희한한 말을 한다. 우리나라의 벌열(閥閱)과 세족(世族)들은 흡사 춘추(春秋)시대 열국(列國)과 같다는 것이다. 춘추시대는 제후국(諸侯國) 간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다. 종주국인 주(周)나라는 그저 바라볼 뿐 제지할 의지도 수단도 없었다. 정조는 이런 열국을 왜 들먹였을까?

숙종 이래 격화된 당쟁으로 인해 18세기 말이면 정치권력은 노론 벌열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었다. 소론은 약간의 지분이 있었고, 남인은 예외적 소수가 조정의 한 귀퉁이에 겨우 발을 걸치고 있었다. 북인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곧 고급관직을 과점하고 있는 다수 노론, 소수 소론, 극소수 남인 가문을 싸잡아 정조는 춘추시대 열국과 같다고 말했던 것이다.

춘추시대의 열국의 일상은 전쟁이었다. 목적은 간단했다. 남의 나라를 집어삼키고 그 땅과 인민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이렇게 말한다. “제(齊)·노(魯)·진(晉)·송(宋)나라는 정치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서로 침략을 거듭했고, 주·거·등·설나라는 땅이 깎이고 약해져 병탄을 당하고 말았다. 그 결과 주나라도 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허구한 날 전쟁을 벌이고 먹고 먹히는 과정을 지속한 결과 종주국인 주나라도 망하고 말았다!

<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몇 쪽이라도 훑어보면, 정조가 한 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의례적인 상소문을 올린다. 다른 어떤 사람의 눈이 반짝인다. 시답잖은 문장 하나, 허접한 사건 하나를 낚아채고 공격하는 상소를 올린다. 그에 대해 반박하면 꼬투리를 잡아 또 공격한다. 아무리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밝혀도 소용이 없다. 이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는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도 한패라고 공격한다. 어느 쪽으로 힘이 기운다 싶으면 눈치를 살피던 자들은 그쪽을 편드는 상소를 올린다. 지방에서도 유생들이 합동 상소를 올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하느냐고? 왕이 처벌을 허락할 때까지 한다. 마침내 그 사람이 쫓겨나 귀양을 간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죽일 것을 요구한다.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한 집안이 완전히 결딴이 난다. 다산의 집안도 이렇게 망했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이런 꼴을 두고 정조는 열국의 전쟁이라 표현했던 것이다.

정조는 보수적이었지만 그래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당시 조선의 현실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또 개혁의 아이디어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왜냐고? 조정에서 날마다 열국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일 해야 할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시답잖은 일로 나날이 서로를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열국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한통속이 된 그자들을 정치와 권력 외부로 축출하기 전에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은 없다. 겨울이 오면 또한 봄도 멀지 않으리!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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