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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16 17:54 수정 : 2018.08.17 10:41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일왕은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에게 인간 세계에서 벌어진 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일왕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일왕의 신민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순을 일본인들은 태연히 받아들인다.

정찬
소설가

1945년 8월15일 정오 제국 정부가 미·영·중·소의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내용의 일왕 히로히토의 육성 방송이 일본 전역에 울려 퍼졌다.

“교전 이미 4년, 짐의 육해군 장병의 용전, 짐의 백료유사(百僚有司)의 여정(勵精), 짐의 일억 중서(衆庶)의 봉공 모두가 최선을 다하였으나 전국은 좋아지지 않고 세계의 대세 또한 우리에게 이롭지 못하다. 더하여 적은 새로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살상침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 에머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다니모토 목사는 히로시마 철도역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일왕의 목소리를 듣고 미국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일본 역사상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평민에 불과한 우리에게 천황이 친히 임하셔서 옥음을 들려주시는 엄청난 축복에 모든 사람들이 굵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썼다.

일본 제국주의를 응시하는 역사의 회랑에서 마주치지 않을 수 없는 두 도시가 있다. 히로시마와 난징이다.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거대한 섬광이 히로시마의 하늘을 가르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시내에서 산 쪽으로 여러 갈래의 햇살이 뻗어가는 것처럼 지나갔다. 히로시마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고 14만여명의 희생자를 낸 원폭의 첫 모습이었다.

도시 전체를 삼키는 화염을 피해 사람들은 강변으로 몰려들었다. 강 주위는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들, 부상자들로 아비규환이었다. 누군가가 천황의 초상화가 강물에 떠내려간다고 외쳤다. 그 소리는 금방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천황의 초상화가 떠내려간다고 안타깝게 외쳤다. 부상자는 물론 죽어가는 사람들도 벌떡 일어나 외쳤다. 초상화 구조 작업은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보트에 탄 사람들이 마침내 초상화를 건져 올리자 기쁨의 함성이 터졌다.

많은 일본인들이 태평양 전쟁을 희생자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히로시마 때문이다. 그들에게 히로시마는 아우슈비츠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 일본인은 히로시마를 민족의 고난이 집약된 신성한 도시로 생각한다. 인류사에서 유일무이한 원폭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인류사에는 역사가들이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 곳곳에 있다. 그 심연 앞에서 역사가의 언어는 무력하다. 일본군의 난징 학살에는 그런 심연이 있다. 난징 학살은 전쟁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사건과 판이하게 다르다. 6주 동안 이루어진 학살의 속도와 규모는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유럽의 어떤 나라도 2차 세계대전 동안의 총사상자 수가 난징을 능가하지 못한다.

일본 퇴역군인 나가토미 하쿠토는 인터뷰에서 “난징에서 내가 목을 베거나 불태워 죽이고 산 채로 파묻은 사람이 200명이 넘는다. 천황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목숨, 심지어 나의 목숨조차 가치 없는 것이었기에 살인이 어렵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종교든 이데올로기든 근본주의의 특징은 그들이 숭배하는 신적 존재를 위해서라면 어떤 행위도 용납된다는 데에 있다. 신적 존재의 품에 안긴 이들의 눈에는, 품에 안기지 못한 이들이 벌레처럼 하찮게 보인다. 벌레를 발로 뭉갰다고 해서 굳이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일왕은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희귀한 갑각류와 미키마우스를 좋아했고, 영국식 조반을 즐겼던 한 인간을 신으로 섬긴 것이다.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에게 인간 세계에서 벌어진 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일왕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일왕의 신민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순을 일본인들은 태연히 받아들인다. 승전국 미국이 일왕에게 전쟁 책임을 묻지 않았던 것은 일본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함이었다.

나치 추종자들은 일본의 천황 이데올로기를 국가 형태와 국가 의식, 종교적 광신의 유일무이한 민족적 혼융으로 보았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을 일본은 본능적 기질로 성취했다고 경탄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외면하는 심리적 뿌리는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단히 희귀한 자민당 장기 집권과 극우세력의 득세,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아베의 집착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 한일 관계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이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긴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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