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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찬, 세상의 저녁] 트럼프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등록 2019-07-11 18:05수정 2019-07-11 19:08

정찬
소설가

지난달 30일 남·북·미 정상의 첫 판문점 만남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께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후 판문점 남쪽 ‘자유의 집’에서 50여분 동안 단독회담을 가졌습니다. 관례와 격식을 뛰어넘은 그 만남에서 대통령께서 한반도 분단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북한 언론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6년 만에 조미 두 나라 최고 수뇌분들께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서로 손을 마주잡고 력사적인 악수를 하는 놀라운 현실이 펼쳐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세계의 주요 언론들도 ‘각본 없는 드라마’ ‘초현실적인 사건’ ‘상징적이고 전례가 없는 역사적 장면’ 등등 다채로운 표현을 썼는데, 그중에서 가장 저의 눈길을 끈 것은 <워싱턴 포스트>의 ‘트럼프 극장’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대통령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한 일련의 행위들에 대해 “극적 연출로 대중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트럼프 특유의 극장정치를 보여준 것으로, 정치적 가치와 전통적 외교 절차 등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라는 요지로 비판했습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합의한 정전협정에 따라 규정된 휴전의 경계선입니다. 당시 판문점에 천막을 세워 T1, T2, T3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T는 ‘임시’(Temporary)란 뜻의 영문 앞 글자였습니다. 천막으로 임시 건물을 세운 것은 정전협정이 곧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전 상태가 66년 동안 지속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20세기는 전쟁으로 점철된 시대였습니다. 두차례 세계 대전과 식민지 독립전쟁에 이어 냉전이 들이닥쳐 인류를 이념으로 갈라 서로를 적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냉전의 가파른 소용돌이 속에서 한반도는 두개의 국가로 찢겼고, 끔찍한 내전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역사의 흐름에 근원적 변화가 온 것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였습니다. 냉전체제가 사실상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냉전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반도를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냉전 박물관’으로 표현했습니다.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체가 세계사적 차원의 소명이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한반도가 냉전의 가장 위험한 참호가 되어 휴전 상태로 70년 가까이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남과 북이 받은 폐해는 혹독했습니다. 국토만 절단된 게 아니었습니다. 영혼이 절단되었고, 마음이 절단되었습니다. 생각이 절단되었고, 기억과 감정이 절단되었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절단을 표상하는 군사분계선 앞에서 대통령께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를 하며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한 발자국만 건너오신다면 사상 처음으로 우리 땅을 밟는 미국 대통령이 되십니다”라고 말하자 “좋습니다. 매우 영광일 겁니다. 한번 해봅시다” 하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현실 바깥에서 현실과 다른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냄으로써 현실의 캄캄한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 극의 역할입니다. 대통령께서는 김 위원장과 함께 판문점이라는 무대에서 극의 본질적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대화로 무너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표현한 놀라우면서도 아름다운 무대였습니다. 그 상징적 장면들이 불러일으킨 마음의 충격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 분단의 고통을 몸으로 겪은 사람과 겪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좁히기 힘든 간극이 있습니다. 판문점의 만남을 비판하는 일부 언론인들과 정치인들, 국제정치 평론가들과 기타 지식인들은 한반도 분단의 고통을 몸으로 겪지 않았거나, 겪었다 하더라도 고통의 기억을 잃어버렸거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했거나, 그 고통이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이익을 준다고 믿고 있거나, 고통의 내면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이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한반도의 냉전을 세계사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눈’이 없습니다. 이 사실이 불러일으키는 슬픔은 극의 진정한 완성을 갈망하게 합니다. 극의 상징을 현실로 변화시켜 세계를 인류가 희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극의 진정한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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