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오늘날 한-일 관계의 심각한 악화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은 아베 정권이 징용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할 책임을 회피하고 이 문제를 정치적 대립으로 ‘해결’하고자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한다는 ‘써서는 안 될 수단’을 사용한 데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징용 문제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의 입장을 바탕으로 해야만 해결의 길이 열릴 것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얼핏 들으면 한국 정치가(자유한국당은 제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 짐작할 것이다. 그만큼 한국 민심과 통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용문의 화자는 일본 정치가다. 일본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지금 일본 정계에서 과거사에 대해 반성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소수 진보 세력뿐이다. 진보파 가운데에서도 특히 공산당은 원칙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 조처가 65% 안팎의 지지를 얻는데도 공산당은 꿋꿋이 이를 비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크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한-일 관계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른 지난여름에 일본 내부의 이런 흐름과 교류하고 협력하려는 노력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있었지만, 일본 공산당 같은 구체적인 상대와 공동 실천을 모색하지는 못했다. 만약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면, 한국에서 시작된 ‘노 아베’ 운동은 일본 사회 내부에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 그중에서도 원내대표 주자인 정의당에 있다. 정의당은 한-일 갈등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도 할 수 있는 말을 좀 더 ‘세게’ 발언하는 것 외에 별다른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런 대외 갈등 국면에서 진보정당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국제연대의 저력이다. 국제연대는 좌파 정치세력의 오랜 전통이자 특유의 강점이다. 좌파정당들은 늘 비슷한 성향의 다른 나라 정당들과 함께 국제조직을 결성하곤 했다. 전지구적 연대는 아직도 미래의 숙제로 남아 있지만,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같은 대륙 차원에서는 교류와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아시아는 그렇지 못하다. 지금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연대가 아니라 고립이다. 간혹 중국이나 홍콩 투쟁 현장에서 한국 민중가요가 들린다며 뿌듯해하지만, 중국에 친서방 지식인들 말고도 공산당 정권에 맞서는 노동운동 흐름이 있다거나 홍콩에도 친중국과 친서방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민주화 운동가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진보 세력의 관계는 역사의 부침에 따라 비극적으로 엇갈렸다. 일본에서 진보파가 전성기일 때에 한국에는 이들과 교류할 만한 세력이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고, 한국의 사정이 많이 달라진 지금은 일본 진보파가 전례 없는 침체 상태다. 그럼에도 한국 진보정당운동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 진보 세력과의 연대에 더 진지하게 임했어야 했다. 일본 공산당을 비롯해 동아시아의 민주적 재편과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세력과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위기 때에 비상하게 협력할 기반을 다졌어야 했다. 이런 노력이 부재했기에 동아시아가 지구 정치의 뜨거운 무대로 떠오를수록 무력감을 느껴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요즘 정의당 주변에서는 진보정당이 수권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수권 능력이 과연 무엇인지는 토론해볼 문제다. 하지만 국제정치 영향력이 수권 능력 목록에서 빠질 수 없다는 점만은 틀림없다. 진보정당은 어떻게 그런 역량을 다질 수 있는가? 바로 자신의 오랜 전통인 국제연대를 통해서다. 단언컨대 진보정당의 원칙을 착실히 실현하는 것과 동떨어진 수권 정당의 길,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칼럼 |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국제연대 없는 진보정당의 무력함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오늘날 한-일 관계의 심각한 악화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은 아베 정권이 징용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할 책임을 회피하고 이 문제를 정치적 대립으로 ‘해결’하고자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한다는 ‘써서는 안 될 수단’을 사용한 데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징용 문제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의 입장을 바탕으로 해야만 해결의 길이 열릴 것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얼핏 들으면 한국 정치가(자유한국당은 제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 짐작할 것이다. 그만큼 한국 민심과 통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용문의 화자는 일본 정치가다. 일본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지금 일본 정계에서 과거사에 대해 반성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소수 진보 세력뿐이다. 진보파 가운데에서도 특히 공산당은 원칙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 조처가 65% 안팎의 지지를 얻는데도 공산당은 꿋꿋이 이를 비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크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한-일 관계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른 지난여름에 일본 내부의 이런 흐름과 교류하고 협력하려는 노력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있었지만, 일본 공산당 같은 구체적인 상대와 공동 실천을 모색하지는 못했다. 만약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면, 한국에서 시작된 ‘노 아베’ 운동은 일본 사회 내부에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 그중에서도 원내대표 주자인 정의당에 있다. 정의당은 한-일 갈등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도 할 수 있는 말을 좀 더 ‘세게’ 발언하는 것 외에 별다른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런 대외 갈등 국면에서 진보정당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국제연대의 저력이다. 국제연대는 좌파 정치세력의 오랜 전통이자 특유의 강점이다. 좌파정당들은 늘 비슷한 성향의 다른 나라 정당들과 함께 국제조직을 결성하곤 했다. 전지구적 연대는 아직도 미래의 숙제로 남아 있지만,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같은 대륙 차원에서는 교류와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아시아는 그렇지 못하다. 지금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연대가 아니라 고립이다. 간혹 중국이나 홍콩 투쟁 현장에서 한국 민중가요가 들린다며 뿌듯해하지만, 중국에 친서방 지식인들 말고도 공산당 정권에 맞서는 노동운동 흐름이 있다거나 홍콩에도 친중국과 친서방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민주화 운동가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진보 세력의 관계는 역사의 부침에 따라 비극적으로 엇갈렸다. 일본에서 진보파가 전성기일 때에 한국에는 이들과 교류할 만한 세력이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고, 한국의 사정이 많이 달라진 지금은 일본 진보파가 전례 없는 침체 상태다. 그럼에도 한국 진보정당운동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 진보 세력과의 연대에 더 진지하게 임했어야 했다. 일본 공산당을 비롯해 동아시아의 민주적 재편과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세력과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위기 때에 비상하게 협력할 기반을 다졌어야 했다. 이런 노력이 부재했기에 동아시아가 지구 정치의 뜨거운 무대로 떠오를수록 무력감을 느껴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요즘 정의당 주변에서는 진보정당이 수권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수권 능력이 과연 무엇인지는 토론해볼 문제다. 하지만 국제정치 영향력이 수권 능력 목록에서 빠질 수 없다는 점만은 틀림없다. 진보정당은 어떻게 그런 역량을 다질 수 있는가? 바로 자신의 오랜 전통인 국제연대를 통해서다. 단언컨대 진보정당의 원칙을 착실히 실현하는 것과 동떨어진 수권 정당의 길,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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