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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6 16:48 수정 : 2016.07.12 15:25

이승욱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삼분의 일은 한 팔을 깔고 엎드렸다. 삼분의 일 정도는 핸드폰을 또는 옆에 앉은 여자친구를 만지작거렸다. 그나마 강단 쪽을 바라보는 나머지 학생들도 강의에 크게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한 말들은 시간이 갈수록 강의실 빈 공간에 의미 없이 수북이 쌓여갔다. 야심차게 준비한 하이데거와 실존, 정신분석 강의는 청중들의 무기력에 의해 무기력해져버렸다. 3년 전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의 강의 경험이다. 나름 강의 좀 한다고 자부했던 나는 무기력해진 채로 돌아왔다. 상처라면 상처였다.

다시 2년이 지나, 작년 또 한 번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심지어 이번에는 무료 강연을 해달란다. 그래도 갔다. 학교 전체가 축제로 들떠 있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정면 돌파하리라, 칼을 갈았다. 내가 선택한 강의의 주제는 ‘무기력’이었다. 학생들은 3년 전과 똑같은 포즈로 강의실에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슬금슬금, 곁눈질로 강단 쪽을 쳐다보더니 강의 중반을 넘기면서 대부분이 똑바로 앉아 강의를 듣는다. 그들의 무기력을 이야기하자 비로소 교감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 강의에 왔던 200명 정도의 그 젊은이들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은 달리 의심할 것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무기력의 함성이었다. 이 똑똑한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나를 당황스럽고 불안하게 했다. 이다지도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인 집단 행위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무기력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이 증상을 이해하고 싶었다.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니, 무기력의 세상이었다. 누구나 한 번은 또는 계속, 많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간헐적으로, 무기력을 경험했거나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무기력이 시작된 지점들이 밝혀졌다. 무기력의 원인은 바로 ‘착취’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자본가의 착취는 물론, 국가, 제도, 심지어 관계, 가족까지, 착취는 곳곳에 만연하여 은밀하게 우리를 빨아먹고 있었다.

부모는 자녀들을 착취한다. 아이들은 생명을 걸고 공부하지만 부모는 조금도 만족하지 않는다. 더더더를 외치며 아이의 노력을 착취해서 자신의 행복을 채우려 한다. 기업은 실적과 성과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는데, 제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편 갈라 서로를 착취하게 하면서 또 싸우게 한다. 남녀는 외모와 능력의 유무로 서로를 착취하면서도 혐오한다. 국가는 이 모든 것을 방조, 조장하며 나아가 국민의 양심을, 정의를, 미래를, 심지어 생명까지 착취한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무기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본능의 발로라고, 그러니 당신들의 무기력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무기력이 깊을수록 착취의 역사도 길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무기력해지지 않을 때까지 무기력해도 된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힘을 얻으려 하지도 말고, 명사의 강연을 듣고 심기일전하려 하지도 말고, 여행이라도 해서 충전하려 하지도 말고, 자신의 무기력을 수용해야 한다. 무기력이라는 증상은 사실 당신이 살고 싶다는, 그것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착취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기 보전 본능의 발로다. 학생들은 그 말을 듣고 서서히 일어났다. 오래 착취당하고도 무기력하지 않다면 그것이 비정상이다. 증상은 종종 정상의 반증이다.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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