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원장 삶에서 불안을 소거할 수 있다면 좋을까? 삶에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면 정말 좋을까? 불안이 가진 선한 기능은 없을까? 실존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불안은 두 종류로 분류된다-정상적 불안과 신경증적 불안. 정상적 불안의 첫번째 특징은, 현재 느끼고 있는 불안과 그 상황이 부합한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길을 건널 때 쌩쌩 달리는 차를 보면 불안을 느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불안은 상황과 부합한다.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존을 지켜낸다. 정상적인 불안의 두번째 특징은 억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죽음은 우리 모두가 직면해야 하는 최종적 사건이다. 존재 소멸에 대한 불안을 애써 잊으려 섹스에 집착하고, 부와 권력에 빌붙어 살려는 이들이 많다. 죽음이 우리 삶의 최종 사건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삶의 유한성과 화해하게 되고, 불안은 유한한 삶을 더 가치있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정상적인 불안의 세번째 특징은 창조성이다. 뛰어난 아티스트들에게는 종종 강박의 형태로 드러나는, 완전하지 않음에 대한 불안이 있다. 불완전함에 대한 불안과 강박은 한계를 돌파하게 하고 새로운 지경으로 들어가게 한다. 정상적인 불안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 가치있게 만들며, 공동체의 더 풍성한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런 불안한 증상들은 참으로 우리가 정상이라는 증거다. 우리의 정상적 불안에 감사! 반면 신경증적인 불안의 첫번째 특징은 불안과 상황이 서로 상관이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인생을 망칠 것이라는 수많은 어른들의 협박은 상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신경증적 불안의 두번째 특징은 검열과 억압이다. 불안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 할수록 타인을 통제하려 든다는 것이다. 부모들 자신의 장래가 불안한데 그걸 억압하니까, 아이들보고 너희들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겁박한다. 지질한 위정자들일수록 불안을 자각하지 않으며, 그럴수록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신경증적인 불안의 마지막 특징은 건설적이지 못하다. 파괴적이며 기괴한 행위를 만들어낸다. ‘창조경제’ 같은 파괴적이고 기괴한 창조 말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고행하는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다가와 불안을 조장하던 마라(魔羅)가 있었다. 불안이 목전에 있음을 느낀 싯다르타는 말한다. “나의 오랜 친구여, 나는 그대를 잘 알고 있다.” 그러자 불안의 마라는 꽁무니를 뺐다. 우리나라에도 불안을 조장하는 무리들이 많다. 항상 전쟁 위협을 들먹이며, 안보의 중요성을 호소하며, 북한의 도발이 목전에 다달았음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우리는 청정한 땅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더 불안하다. 우리의 불안이 더 정상적이다. 실존주의 사상가 롤로 메이는 이렇게 정의한다. “불안은 우리의 실존이나 실존과 동일시하는 가치에 대한 위협.” 경제가 어렵다고,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고, 나라가 망한다고 부르‘짖으며’, 우리의 실존이 위협당하고 있다며 불안을 조장하는 ‘너희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너희들이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무엇을 지키려 우리를 개돼지로 만들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불안에 직면하는 한, 너희들은 우리를 조종할 수 없다. 앞으로 너희들은 점점 더 불안해질 것이다. 너희들의 신경증적 불안에 감사!
칼럼 |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불안에 감사! |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원장 삶에서 불안을 소거할 수 있다면 좋을까? 삶에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면 정말 좋을까? 불안이 가진 선한 기능은 없을까? 실존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불안은 두 종류로 분류된다-정상적 불안과 신경증적 불안. 정상적 불안의 첫번째 특징은, 현재 느끼고 있는 불안과 그 상황이 부합한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길을 건널 때 쌩쌩 달리는 차를 보면 불안을 느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불안은 상황과 부합한다.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존을 지켜낸다. 정상적인 불안의 두번째 특징은 억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죽음은 우리 모두가 직면해야 하는 최종적 사건이다. 존재 소멸에 대한 불안을 애써 잊으려 섹스에 집착하고, 부와 권력에 빌붙어 살려는 이들이 많다. 죽음이 우리 삶의 최종 사건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삶의 유한성과 화해하게 되고, 불안은 유한한 삶을 더 가치있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정상적인 불안의 세번째 특징은 창조성이다. 뛰어난 아티스트들에게는 종종 강박의 형태로 드러나는, 완전하지 않음에 대한 불안이 있다. 불완전함에 대한 불안과 강박은 한계를 돌파하게 하고 새로운 지경으로 들어가게 한다. 정상적인 불안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 가치있게 만들며, 공동체의 더 풍성한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런 불안한 증상들은 참으로 우리가 정상이라는 증거다. 우리의 정상적 불안에 감사! 반면 신경증적인 불안의 첫번째 특징은 불안과 상황이 서로 상관이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인생을 망칠 것이라는 수많은 어른들의 협박은 상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신경증적 불안의 두번째 특징은 검열과 억압이다. 불안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 할수록 타인을 통제하려 든다는 것이다. 부모들 자신의 장래가 불안한데 그걸 억압하니까, 아이들보고 너희들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겁박한다. 지질한 위정자들일수록 불안을 자각하지 않으며, 그럴수록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신경증적인 불안의 마지막 특징은 건설적이지 못하다. 파괴적이며 기괴한 행위를 만들어낸다. ‘창조경제’ 같은 파괴적이고 기괴한 창조 말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고행하는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다가와 불안을 조장하던 마라(魔羅)가 있었다. 불안이 목전에 있음을 느낀 싯다르타는 말한다. “나의 오랜 친구여, 나는 그대를 잘 알고 있다.” 그러자 불안의 마라는 꽁무니를 뺐다. 우리나라에도 불안을 조장하는 무리들이 많다. 항상 전쟁 위협을 들먹이며, 안보의 중요성을 호소하며, 북한의 도발이 목전에 다달았음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우리는 청정한 땅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더 불안하다. 우리의 불안이 더 정상적이다. 실존주의 사상가 롤로 메이는 이렇게 정의한다. “불안은 우리의 실존이나 실존과 동일시하는 가치에 대한 위협.” 경제가 어렵다고,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고, 나라가 망한다고 부르‘짖으며’, 우리의 실존이 위협당하고 있다며 불안을 조장하는 ‘너희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너희들이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무엇을 지키려 우리를 개돼지로 만들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불안에 직면하는 한, 너희들은 우리를 조종할 수 없다. 앞으로 너희들은 점점 더 불안해질 것이다. 너희들의 신경증적 불안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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