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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0 16:18 수정 : 2016.11.20 19:04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이렇게까지 됐는데 다음에 정권 안 바뀌면 정말 이 나라 떠야죠.” 서른살 청년과 얘기 나누던 끝에, 그가 한 말이다. ‘이렇게까지’란 여러가지 정황을 다 포함한 말이다.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책임과 품격 따위는 전혀 가진 바 없고, 그 권력만 전횡했던 박근혜가 나라 곳곳을 괴사시켜 버렸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 아비가 한 짓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4년도 안 된 기간에 이만큼 해냈다는 점에서는 아비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어리바리한 놈이 알고 보니 당수 8단”이라더니, 칠푼이가 나쁜 짓은 통 크고 꼼꼼하게 했다는 말이 떠돈다. 나라꼴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 대해서는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안다.

정권이 바뀌기를 바라는 그 청년의 마음에 특정인이 있어도, 없어도 좋다. 하야가 됐건 탄핵이 됐건, 또는 내년 12월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건 다음에는 대통령직에 걸맞은 식견과 품위,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칭해 ‘잃어버린 십년’이라 욕하던 사람들이 만든, 그 정권이 괴사시킨 또 다른 십년을 버텨낸 젊은이의 불안한 희망가다. 한국에 젊은이들이 텅텅 비어 ‘다 어디 갔냐’고 물을 정도로 청년들을 모두 외국의 일자리로 보내버리라던 박근혜의 바람이 이렇게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청년의 나이 즈음에 한국을 떠났다. 사정은 달랐지만 이유는 같았다. 연이은 군사 독재 정권과 또다시 실패한 정권 교체, 진보진영 인사들의 후안무치한 변절, 이에 맞먹는 여러가지 개인적인 삶의 불만들. 이 나라를 떠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비장했던 당시의 심정으로는) 내 스스로를 지구의 변방에 유폐시키려 했다. 육지로 건널 수 없는 나라, 직항으로 가장 먼 곳, 한국인이 가능한 한 없는 도시를 향해 짐을 쌌다. 나는 그곳에서 평안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이 있는 곳에 변방은 없었다. 변방에서도 일상은 언제나 첨예한 전위에 있었다. 10여년이 지나, 변방이 곧 전위며 삶의 우열을 가리는 짓은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돌아오니, 이젠 떠날 수도 없다. 내게는 이 나라에서 잘 사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청년과 이야기를 나눈 그날 저녁, 평생을 교사로 재직하다 나중엔 고위 교육공무원으로 일하셨던 선배 선생님으로부터 신문 기사를 하나 전달받았다. 지난 12일 광화문 집회에 불순세력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황당한 기사였다. 그분의 단아하고 점잖은 모습을 좋아했는데, 선생님에 대한 실망이 올라와 바로 답신 문자를 썼다. “선생님, 젊은이들 살아갈 나라입니다.” 하지만 손자 손녀와의 단란한 프로필 사진을 보고는 전송을 누르지 못했다.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였다.

나는 수백만의 촛불이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 것 같다. “나는 이 나라에서 내 부모 형제 아이들, 친구 이웃들과 계속 잘 살고 싶다.” 절망에 내몰려 부르는 희망가다. 떠나는 것이 능사인가, 또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인가, 가서 잘 사는 것은 더 어렵다.

떠나기로 한 것만이 결정이 아니다. 떠나지 않기로 매일매일 결정하며 사는 것은 더 힘들다. 활활 타는 횃불로도 다 태울 수 없는 그 힘겨움을 촛불에 가득 담아 외친다. 나는 이 나라에서 살고 싶다.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말면서, 서로 존중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 바람 불면 촛불은 들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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