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5 18:19
수정 : 2019.05.0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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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파킨슨병, 조현병 같은 뇌질환들이 뇌에서 멀리 떨어진 대장 안의 미생물 생태계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10년 새 잇따르고 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조절하면 뇌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생겨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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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뉴질랜드에서 거주하며 정신병 재활전문 치료기관에서 10년간 근무한 이력이 있다. 주로 중증 조현병을 앓는 환자들, 그리고 심각한 경계선 성격장애나 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일상적인 돌봄과 치료를 제공하며 사회 복귀를 돕는 치료기관이었다. 환자들의 증상 심각도에 따라 가장 낮은 1단계에서 가장 심각한 4단계까지 각각 다른 밀접도의 치료와 돌봄 시스템을 만들어 가장 적절하고 유기적이며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을 가동했다. 각 환자를 일상적으로 돌보는 정신건강치료사가 키워커(key worker)로 배정되고, 그의 주도하에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정신과 간호사, 심리치료사로 구성된 케이스 관리 팀이 정기적으로 회의를 했다. 필요한 상황에서는 가족은 물론이고 변호사나 경찰, 지방자치단체 복지 담당관 등이 유기적으로 협조했다.
조현이라는 표현은 현악기의 현을 조율하듯, 정신의 균형을 잘 조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 사람(환자)이 자신의 정신을 잘 조율하지 못하는 심신미약 상태에 있을 때, 그를 돌보는 주변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환자의 삶이 잘 조율될 수 있도록 힘을 합해서 그의 정신건강 상태를 돌보는 것이다.
정신의학계는 조현병의 발병이 유전이나 생물학적 요인에 주원인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조현병에 대해 상당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계의 의견은 가정폭력, 성폭력, 또한 이 두가지가 합쳐진 가족 내 성폭력, 공포스러운 환경에 장기간 방치된 경험, 극심한 분열적 성격의 주 양육자, 폭력적으로 억압적인 상황에 항거불능 상태로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된 인생 초기의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가 조현병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물론 신경생리적 요인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현병 증상을 경험하는 이들을 10년 넘게 겪으며 나는 그들이 참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 입어 손상된 그들의 정신이 쉽게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엉뚱하고 종잡을 수 없게 흘러갔지만 그들은 올바른 사랑, 그리고 현이 잘 조율된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듯 조화로운 관계를 언제나 목말라 했다. 머리를 휘젓는 환청이 들리고, 감각을 무너트리는 환영이 보이면 자신의 증상이 심해졌음을 자각하고 담당 직원에게 담담히 긴급 처방을 요구하던 그들의 표정은 흡사 해탈한 사람들 같았다. 그들도 한때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못하고 병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분노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가 그들을 돌보겠다고 나서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게끔 도우려는 전문가들과 가족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병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조현병을 앓는 몇몇 환자가 흉기를 휘두르고 사람을 죽이는 괴물처럼 변한 것은 아무도 그들을 제대로 조화롭게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병을 선택한 적도 없고, 또한 자신의 병으로 인해 타인에게 해를 끼칠 의사도 없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정신을 조화롭게 운영하지 못할 뿐이다. 이 사회가 제발 그들을 잘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
그런데 돌봄을 제공해야 할 조현병 환자들과는 달리 사회에 풀어놓으면 안 될 분열적 정치집단이 있다. 감히 독재 타도, 헌법 준수, 민주 수호라는 말을 저리도 뻔뻔스레 제창하는,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짓들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는 저 분열된 무리들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환청과 환영에 휘둘리는 저 적폐 무리들을 하루빨리 사회로부터 격리해 이 세상을 좀 더 즐겁고 안전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저들을 매일 지켜봐야 하는 이 상황도 참 안타깝다.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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