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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8 18:11 수정 : 2019.11.19 02:38

이나연 ㅣ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퀸메리호 7층 창가 라운지에 앉아 있다. 창밖으로는 남해의 아름다운 섬들이 지나간다. 정확히는 배가 움직이고 있지만, 내 시점에선 섬들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왜 편한 비행기를 두고 차와 배를 이용한 긴 노선의 여행을 택했나. 구체적으로 나는 왜 제주에서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올라갔다가, 서울에서 차를 끌고 목포까지 이동해 1박을 한 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다시 제주로 가고 있는 건가. 이건 제주가 섬이기 때문이고, 내가 작품 운송과 설치에 최종 책임을 지는 큐레이터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섬이길 희망하는 제주에 예술작품을 운반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럴 기회가 많지 않을 테니, 이 기회에 나와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약간의 충격에도 심각한 재산상의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연약하고도 비싼 예술작품을 섬까지 안전하게 운반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1단계, 과대포장을 한다. 그림 한 점, 조각품 한 점이 들어가는 거대한 나무궤짝(크레이트)을 특수 제작하고, 내부엔 작품의 형태에 맞게 제작한 스티로폼을 끼워둔다. 그러고도 남는 공간엔 비닐이나 버블랩 같은 포장재를 총동원해 메꿔 어떤 작은 움직임에도 작품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한다. 2단계. 과대포장을 해서 이미 부피가 커지고 무게도 두세배 늘어난 크레이트를 무진동 트럭에 싣는다. 무진동 트럭이란 충격이 흡수되도록 에어서스펜션을 달아 특수설계한 트럭으로, 예술품 전문 운송 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특수장비다. 해외로 갈 경우에는 다시 컨테이너에 실어 배로 보내거나, 항공운송을 하게 되는데, 과대포장한 그림 한 상자를 해외로 보내는 가격은 당연히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비싸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해외, 즉 육지에 속하지 않아 바다 너머에 위치한 섬인 제주에 작품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고가의 항공운송과 무진동 트럭을 배에 싣는 법뿐이다. 국내 운송이지만 배편으로 이동하며 추가되는 시간과 그에 따른 인건비를 계산하다 보면, 항공운송이 더 저렴한 경우도 있다.

제주에서 열리는 전시를 위해 높이가 120㎝ 되는 조각작품 두 점을 서울에서 제주로 운반해야 했다. 애초 배송비로 해외 배송이 아닌 트럭 운송비 정도밖에 책정해두지 못한 예산 탓에 골치가 아팠다. 사실 대부분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다급한 일정도 섬세한 작품 운송도 추가 비용을 더하면 대체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받아볼 수 있게 된다. 돈이 없을 경우, 제주로 작품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업체에 맡길 모든 일을 직접 하면 된다. 작가의 작업실에 차를 몰고 가서 작품을 안전하게 차의 트렁크에 싣는다. 물론 포장은 안전하게 해둔다. 조심조심 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지나 목포에 도착. 배에 차를 싣고 제주로 이동한다. 무사히 차를 몰아 다시 제주의 미술관에 작품을 가져다 두고, 미리 준비한 좌대 위에 작품을 올린 뒤, 작품이 빛나도록 조명을 쏘아준다. 그러는 과정 안에 내가 이렇게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배에 타게 된 것이다. 작품은 배의 2층에 있는 차량 갑판에 주차한 차 트렁크에 무사히 모셔져 있다. 아직까진 모든 게 괜찮다. 미술관에서 포장을 풀었을 때 작품이 부서져 있는 아찔한 상상도 끼어들긴 한다.

작품이 깨지고 부서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인가 묻는다면 이게 제법 발생한다. 열심히 작업한 작품을 전시회 직전에 액자를 하려고 액자집에 맡겼다가 직원의 실수로 그림이 찢어지는 일이 생긴다. 해외 아트페어에 작품을 보내두고(해외 운송의 지난한 과정은 위에 묘사했지만) 페어장 부스 벽에 작품 설치를 마치고 뒤돌아서는 순간, 작품이 뚝 떨어져 부서져 버리기도 한다. 최근엔 미술관에서 셀피를 찍느라 수선을 떨던 관객이 작품에 부딪혀 명작이 파손되는 사례가 꽤 쏠쏠하게 해외 뉴스에 나온다. 그래서 큐레이터는 언제나 노심초사 작품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큐레이터의 어원은 보살피다라는 뜻의 라틴어인 쿠라레(curare), 즉 케어(care)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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